식사에 대한 생각 비 윌슨 지음|김하현 옮김 어크로스|516쪽|1만7800원

바나나 이야기부터 해 보자. 거의 모든 바나나가 열대 지역에서 재배되지만 그 바나나를 먹는 곳은 온대 지역이다. 열대지방을 제외한 많은 곳에서 바나나는 한때 '외국의 맛'이었지만 수퍼마켓에서 가장 저렴한 과일이 된 오늘날의 바나나에는 색다르고 이국적인 면이 하나도 없다. 게다가 세계인은 코카콜라만큼 한결같은 맛의 바나나를 먹고 있다. 운송이 쉽고, 바나나의 곰팡이가 일으키는 전염병인 파나마병에 저항력이 있는 '캐번디시 바나나' 품종이 현재 재배되는 전체 바나나의 47%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음식 작가이자 역사가인 저자는 "바나나 같은 과일의 단일 품종 재배는 맛보다는 저렴한 가격과 풍부한 양에 집착하는 우리 문화의 증상"이라고 지적한다. 바나나 아니라 사과도 마찬가지다. 영국에는 사과 품종 6000종이 있지만 상업적으로 재배되는 품종은 생김새와 모양이 그럴 듯하고 평범한 단맛이 나는 열 가지 정도뿐이다. 품종 단순화는 우리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서로 다른 사과 품종에는 특정 종류의 암과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되는 서로 다른 피토케미컬이 들어 있다.

단백질, 탄수화물, 섬유질 등 각종 영양소가 어우러진 지중해식 식단. 저자는 “몸에 좋은 것만 먹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믿음”이라며 “극단으로 치우친 식사가 가장 나쁘다. 탄수화물을 안 먹는다든가 하지말고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농업 및 축산 기술 발달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식탁을 갖게 됐다. 그러나 다양성 이면에 '획일성'이 자리한다. 오랫동안 영양학자들은 올리브 오일과 생선, 토마토가 풍부한 '지중해 식단'을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건강 식단'으로 꼽았지만 세계보건기구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크레타섬에 사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더 이상 지중해 식단을 먹지 않는다. 2017년 기준으로 유럽에서 가장 체중이 많이 나가는 지중해 아이들은 다른 지역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콜라를 마시고 스낵을 먹는다. "미각은 확장됐지만 식재료의 측면에서는 전보다 더 편협해졌다. 우리 모두의 식습관은 무서울 정도로 똑같아지고 있다."(58쪽)

먹을 것이 부족했던 우리 조상이 전염병이나 결핵을 두려워하며 살았다면, '풍요의 식탁'이 지배하는 이 시대의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는 식습관이다. 2015년 전 세계에서 흡연으로 사망한 사람은 700만명, 알코올로 사망한 사람은 330만명이다. 채소와 견과류, 해산물이 적은 식단이나 가공육과 가당 음료가 과다한 식단처럼 '식이 요인'으로 사망한 사람은 1200만명에 달한다.

마시는 것이 먹는 것보다 더 문제다. 2010년 미국인이 음료를 통해 섭취한 하루 평균 칼로리는 1965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한 450칼로리였다. 우리 유전자가 액체를 마시는 것으로는 포만감을 느끼지 않게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음료를 통해 애초에 의도한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섭취하게 된다. 저자는 말한다. "물 이외의 모든 것은 음료가 아니라 간식이며, 꿀꺽꿀꺽 마시는 게 아니라 음미해야 한다고 되뇌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123쪽)

소셜 미디어는 정보인 동시에 해악이다. 인스타그램 사진에 예쁘게 찍히는 음식이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은 맛을 희생하며 음식의 외관에 집중하게 됐다. 저자는 "무지개색 베이글이 대표적인 예다. 이것은 실재하는 기쁨이라기보다는 기쁨의 아이디어에 가깝다"고 말한다.

퀴노아와 같은 '수퍼 푸드'의 유행도 반길 일은 아니다. 볼리비아산 퀴노아가 유행하면서 퀴노아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정작 볼리비아 사람들은 퀴노아를 못 먹게 됐다. '수퍼 푸드'는 수익을 노린 업자들의 사기에도 취약해 오염되기 쉽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식사에 대한 다채로운 논변을 펼쳐 보이는 책이다. 교조주의적으로 음식을 대하지 않는다는 점이 일단 돋보인다. 저자는 "동물 복지 고기가 전 세계 대다수 소비자의 예산을 크게 벗어난다면 이러한 육류 소비를 '윤리적'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어딘가 불편한 점이 있다"고 꼬집는다. '좋은 식사'란 결국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먹는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전후에 경제 급성장을 이루면서도 전 세계적 패스트푸드 열풍에 휩싸이지 않고 전통적이며 ‘건강한 식사’를 지켜가고 있는 대표적 나라로 한국을 꼽는다. “1980년대 전 세계 대부분의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켜면 사탕과 과자, 탄산음료와 시리얼 광고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한국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켜면 국내 생산 식품의 장점을 홍보하는 정부 캠페인을 보았다.”(91쪽) 원제 The Way We Eat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