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가 '진원지'다. 유럽은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에 따라 26국에서 제약 없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 EU(유럽연합)가 국경 봉쇄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빠른 속도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25일(현지 시각) 하루에만 유럽 6국에서 새로운 우한 코로나 확진 환자가 발견됐으며, 6국 모두 이탈리아에서 바이러스가 옮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청정 지대였던 스위스·오스트리아·크로아티아에서 모두 '이탈리아발 첫 환자'가 발견됐고, 한동안 소강상태이던 독일·프랑스·스페인에서도 최근 이탈리아를 방문한 사람이 확진자로 추가됐다. 26일엔 그리스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다.

스페인령 호텔서 확진자… 관광객 1000명 격리 - 25일(현지 시각)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섬의 한 호텔 직원들이 우한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스페인 당국은 호텔에 머무르던 이탈리아인 의사가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자 이 호텔에 격리 조치를 내렸다. 이곳에 묵고 있는 1000명가량 관광객은 퇴실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현지 매체는 전했다.

25일 오스트리아 남부 도시 티롤에서는 차를 몰고 국경을 넘어온 이탈리아인 20대 남녀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크로아티아에서는 밀라노를 여행하고 온 젊은 남성이 양성 반응이 나와 격리 치료에 들어갔다. 스위스에서도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댄 남부 지역에서 최근 밀라노를 다녀온 70대 남성이 첫 확진 환자로 판명됐다. 오스트리아와 크로아티아는 서유럽보다 위생 수준이 떨어지는 동유럽 국가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 우한 코로나가 동쪽으로 확산되는 길목이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기존 확진자가 모두 퇴원했던 프랑스에서는 25일 3명의 확진자가 추가됐는데(1명은 당일 사망), 그중 한 명이 최근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를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2주간 확진자가 늘지 않았던 독일에서도 밀라노를 여행한 20대 남성을 포함해 2명이 이날 양성 판정을 받았다.

EU는 그러나 국경 봉쇄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뚜렷하다. 솅겐조약을 바탕으로 단일 경제권을 구축한 EU가 자유로운 이동을 막을 경우 경제적 타격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로 와해될 위기를 맞고 있는 EU가 국경을 차단하는 전례를 만들면 '하나의 유럽'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퇴색될까 봐 두려워하는 측면도 있다. 이날 이탈리아·프랑스·독일 등 7국은 보건장관회의를 열었지만 "국경 봉쇄는 합리적이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며 "대규모 문화·스포츠 행사를 전면 취소하지 말고 사례별로 대응하자"는 결론을 냈다.

이탈리아 정부는 26일까지 사망자가 12명, 확진 환자가 374명이라고 발표했다. 이틀만에 사망자는 5명, 확진 환자는 145명 늘어났다. 이탈리아는 이달 초 중국을 오가는 직항로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중국인 입국 자체를 막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거친 비행편이나 육로·해상로를 이용한 입국이 가능했다. 따라서 중국인이 들어와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이탈리아 당국은 최초 발병 경로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국경 봉쇄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은 공포를 키우고 있다. 영국은 개학을 연기하고 일선 초·중·고를 폐쇄하는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검토 중이다. 유럽 주둔 미군의 최고사령관인 토드 올터스 공군 대장은 주독(駐獨) 미군에 대해 이동 제한 조치를 고려 중이라고 발표했다.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를 오가는 열차 운행을 중단시켰다.

한편, 25일 브라질에서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으로 나왔다. 남미에서 확진자가 나온 건 처음이다. 이로써 우한 코로나는 세계 모든 대륙으로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