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하루 동안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신규 확진자가 284명이나 쏟아져 나오면서, 국내 감염자는 1000명을 넘어서 총 1261명이 됐다. 지난달 20일 중국인 여성이 국내 첫 확진자 판정을 받은 뒤 하루 증가 폭으로 최대다. 국내 발생 후 37일 만에 한국이 중국에 이어 감염자 발생 2위국이 됐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렇게 됐느냐"는 말이 나오는 지경이다.

조만간 확진자 수가 1500명에 이르면서, 우리나라는 우한 코로나 진앙으로 현재 봉쇄 상태에 있는 중국 후베이성 다음으로 감염자가 많은 '지역'이 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 광둥성(1347명), 허난성(1271명) 등보다 감염자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이제 주요국들은 한국과 중국을 비슷한 상황의 국가로 본다.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하는 나라가 20개국에 달한다.

차에서 안내리고… ‘드라이브스루’ 검사 시작 - 전국에 우한 코로나 감염증 확진자가 1200명을 넘어선 26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 내 공용주차장에 마련된 ‘고양 안심 카(Car) 선별진료소’에서 한 시민이 자가용에 탄 채로 우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다. 이날 경기 고양을 비롯해 세종, 대구에서도 차에 탄 채로 검사받는 ‘드라이브 스루(Drive Thru)’식 선별진료소가 운영을 시작했다. 방역 당국은 이같이 다른 행인들이나 환자들과 접촉하지 않고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는 임시 선별진료소나 이동식 선별진료소를 더 늘릴 계획이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번 '중국발(發) 바이러스 방역 재앙'을 정부와 대통령이 방역 주체인 질병관리본부와 감염병 전문가들의 권고와 의견을 무시한 결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의 우려는 한 치도 어긋나지 않고 모두 현실이 됐다. 대한감염학회는 지난 2일과 15일 두 차례 권고문을 내고 네 가지 경고를 했다. 중국 입국 제한 확대, 지역사회 감염 확산 차단, 원인불명 감염자 급증 대비, 음압병상 포화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정부는 귀를 기울이기는커녕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4일 연속 신규 확진자가 없자 경계를 풀고 느슨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3일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다"라고 했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승기를 잡았다" "조용히 실효적으로 차단했다" 등 낙관적 발언들을 내놨다. 그사이 중국발 바이러스는 대구와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런 방심의 틈을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뚫고 들어와 '방역 재앙'을 낳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초기 대응 단계에서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감염학회 등이 수차례 제기한 중국에 대한 전면적인 입국 금지 내지 이에 준하는 입국 지역 제한 확대 요구를 묵살한 것이다. 정부는 전문가들이 권고할 때마다 "검토 중이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쏟아지자 정부는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우한 코로나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 대해 "우한 코로나 방역 대책은 때를 놓친 실기(失機),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실책들이 산처럼 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 입국 제한 확대 묵살한 정부

대한감염학회는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대한항균요법학회 등 국내 주요 감염병 관련 전문가 단체와 지난 2일 권고문을 통해 정부의 후베이성 입국 제한 조치만으로 부족하니, 중국서 신규 확진자 40%가 나오는 중국의 다른 지역에 대해서도 입국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중국에 대한 입국 제한을 강화하지 않고 국내 감염자를 추적 격리하는 방식의 방역은 '문을 열어놓고 모기를 잡는 격'이라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틀 뒤인 4일부터 우한과 후베이성에 한정된 입국 금지 조치를 시행한 것이 고작이다. 의료계와 감염병 전문가들은 "번번이 우리 말을 듣지 않았던 정부가 이제라도 중국 입국 제한 확대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정부는 전면적인 입국 제한을 요구하는 의협의 주장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 의사는 "정부가 의협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방역 정책 파트너로 인정했던 대한감염학회의 두 차례 대정부 권고조차도 무시했다. 감염학회 관계자는 "무증상이나 가벼운 증상 상태서 바이러스를 갖고 오는 중국발 입국자를 공항에서 걸러낼 수 없고, 이들이 지역사회에 바이러스를 퍼뜨리기에 입국 제한 지역 확대를 정부에 권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역사회 2차 대유행 경고도 무시

감염학회는 1차 권고문에서 "이미 중국서 입국한 사람과 중국에서 오는 입국자 모두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입국 제한을 제때 하지 못해 지역사회 감염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국내 확진자가 15명에 불과할 때였지만 전문가들은 "곧 닥칠 일이니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오히려 정부는 다음 날인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말했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이 참여한 당정청 회의에서도 입국 제한 확대에 대한 추가 조치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중국발 입국자 전원에 대한 2주간 자가 격리 권고도 이뤄지지 않았다. 중국발 입국자는 외출을 자제하고, 의심 증상을 보이면 1339나 보건소로 신고해달라는 정도였다. 그리고 지난 12일 이후 확진자 증가가 4일간 멈추자 대통령을 중심으로 장관, 여당 지도부에서는 사태를 낙관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방역 당국은 지난 14일 "집단 행사를 연기하거나 취소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19일에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실효적으로 차단했고, 중국도 감사의 뜻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감염학회는 15일 2차 대정부 권고문을 내고 "잠재적인 2차 유행과 지역사회 유행에 대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며 "우리나라는 인구 밀도가 높고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가 밀집되어 있어 잠재 감염자가 유입되면 확진자가 누적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감염학회 경고대로 진행된 코로나 사태

이후 상황은 감염학회가 1·2차 권고문에서 지적한 대로 전개됐다. 실제로 지난 18일 신천지 신도 중 31번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로 전국에는 감염원을 명확히 알 수 없는 '깜깜이' 확진자가 급속도로 늘었다. 서울·대구 등 인구가 밀집된 대도시를 중심으로 우한 코로나에 감염된 신천지 신도들이 퍼져 나간 결과다. 결국 지난 22일 전국 17개 시·도 전체에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이 밖에도 감염학회는 "확진자를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국가 지정 격리 병상이 빠르게 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지역별로 전담 병원을 미리 지정하거나 병상, 의료진을 조기에 확보하지 않았다. 현실은 우려대로 31번 확진자 발생 불과 3일 만에 대구·경북 지역 국가 지정 음압병상은 가동률 100%의 포화 상태가 됐다. 26일 오전 현재 서울, 부산, 강원, 충북도 국가 지정 음압병상은 꽉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