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필터 줄 테니 완제품 50 대 50 나누시죠. 어차피 원자재 없음 공장 못 돌리시잖아요."

보건용 마스크를 하루 3만~4만 장 만드는 부산의 한 제조업체에는 이런 전화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걸려온다. MB(Melt Blown) 필터는 보건용 마스크 제작에 필요한 핵심 원자재다. 이 회사 대표이사 A씨는 "우리가 최근 중국산 MB 필터 수입이 안 돼 생산 중단까지 고려 중인 걸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국내 마스크 생산업체 120여곳 가운데 70%는 중국으로부터 MB 필터를 공급받아 왔는데, 그 공급이 지난 설 연휴 이후 사실상 끊긴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은 25일에도 마스크와 관련해 "수요를 감당하기 충분한 생산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매점매석만 잡으면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정부는 5일부터 '제조업체가 월평균 판매량의 150% 이상 완제품 마스크 물량을 5일 이상 팔지 않고 보관해선 안 된다'는 매점매석 금지법을 시행, 고강도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마스크 값은 잡히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금지법에 허점이 있다"고 말한다. 매점매석 단속 대상은 '마스크 완제품'인데, 유통업자가 '필터'를 매점매석해 이를 공장과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생산량 자체를 직접 조절할 경우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한 마스크 필터 도매업자는 "필터 사재기는 식약처에서 잡지도 않는다"고 했다.

정부는 "필터는 국내산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했다. A씨는 "중국 필터 수입이 끊긴 이달 초부터 공급처를 국내로 돌리긴 했지만, ㎏당 1만6000원이던 단가가 5만~6만원대로 세 배 올랐고, 그나마도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루 20만 장씩 생산해 주로 관공서에 납품한다는 또 다른 마스크 제조업체도 "폭증한 수요를 국내 필터 업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국내 필터 생산업체는 10여곳에 그친다.

실제로 A 씨 공장 외에도 여러 마스크 제조업체가 필터를 대량 확보한 업자들로부터 물물교환 제안을 받는다. 서울의 한 마스크 제조업체 관계자는 "필터 원단 2000t을 제공할 테니 생산량 절반을 떼 달라고 한 곳도 있었다"고 했다. 2000t은 마스크 10억 장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한국봉제공장 등 온라인 카페에도 "마스크 원단 무제한 공급. 50대50 쿨거래" 등의 노골적인 거래 제안 글이 하루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다.

필터업자와 공장이 '물물교환'에 합의하면 정부를 속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한 도매업자는 "서류상으론 도매업자와 공장이 정상적으로 필터와 마스크를 서로 사고판 것처럼, 금액도 나간 물량에 맞춰 조절해 쓰면 된다"고 했다. 일종의 '다운계약서'를 작성한다는 것이다.

필터 공급 배후는 대부분 중국이다. 개중에는 "중국 정부와 공장을 끼고 필터를 무한대 제공한다"는 판매상도 있다. "원래 신발 깔창과 양말을 제조하다가 최근 마스크 도매사업에 뛰어들었다"는 한 필터업자는 "마스크 생산량 절반을 대금 대신 받거나 완제품 1장당 100원에 매입한다"고 했다. 또 다른 필터업자도 "중국은 원자재 수출 금지지만 우린 '관시'(중국 공무원과의 관계)를 끼고 들여올 수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이렇게 교환된 마스크 대부분이 중국으로 가는 것으로 본다. 실제로 국내 시장이 마스크 품귀 현상을 겪는 동안 대(對)중국 마스크 수출량은 대폭 늘었다. 25일 관세청에 따르면 마스크가 포함된 '기타 제품'의 올해 1월 중국 수출액은 약 6135만달러로 작년 12월 약 60만달러보다 100배 넘게 늘었다. 2월 수출액(20일까지)은 약 1억1845만달러로 작년 12월보다 200배 가까이 증가했다.

25일 정부가 마스크 수출 금지령을 발표한 직후에도 필터업자들은 활발히 거래 글을 계속 올렸다. 한 업자는 "고시에는 '인도적 지원'에 대한 단서 조항이 있는데, 우리는 중국 적십자와도 연계돼 있다"며 "공장이 생산만 해주면 우리가 재료도 주고, 물량도 책임지고 가져가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