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젊은 의사 여섯이 1968년 나이지리아 내전 현장을 찾았다. 생명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 부상자와 질병·기아로 죽어가는 주민들을 돌봤다. 그로부터 3년 뒤 ‘환자 있는 곳에 우리는 간다’는 모토 아래 ‘국경없는의사회’가 발족했다.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때 가파른 산악지대에 당나귀를 타고 들어가 부상자를 치료하고, 걸프전 때는 전세기 60대를 타고 날아가 7만명 넘게 구호했다. 지금도 세계 곳곳 난민촌, 오지에서 목숨 걸고 활동하는 의사들이 있다.

▶감염병과의 전투에서도 의사·간호사가 최전선을 지킨다. 한국 의료 역사상 최대 고비는 2015년 메르스 사태다. 병원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퍼져 의료진이 사투를 벌였다. 당시 수퍼 전파자가 나온 한 병원에선 청소와 음식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감염 우려 때문에 근무를 꺼려 했다. 그러자 체력·정신력 강한 간호사 12명이 특별 선발돼 수술 참여는 물론 세탁물과 의료 폐기물을 나르고 환자들이 사용하는 변기, 병원 복도까지 닦았다. 간호사 한 명이 감염돼 쓰러지면서 국민 심금을 울렸다.

▶감염을 막으려고 의료진은 '레벨 D'로 불리는 개인 보호 장구를 쓴다. 흰색 우주복 같은 전신 방호복과 의료용 마스크, 안면 보호경으로 구성돼 있다. 방호복은 작은 틈새라도 생기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해서 한번 입고 벗을 때마다 10~30분 걸린다고 한다. 무게는 '가벼운 비옷' 정도지만 통풍이 안 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두세 시간 입으면 속옷까지 젖어 걷기조차 힘들고 더 오래되면 탈진 증상이 올 정도라고 한다.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게 의료 물자다. 그런데 환자 수백 명이 쏟아진 대구·경북 지역에 의료 장비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알코올 솜으로 안면 보호경을 닦아 쓰고 방호복이 부족해 재사용한다고 한다. 의사·간호사의 최대 위험은 환자에게서 감염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머리카락 굵기의 수백분의 1 정도 크기다. 환자의 작은 기침으로도 감염될 수 있다.

▶우한 코로나 사태가 한 달을 넘기면서 20명 넘는 의료진이 감염됐고 260여명은 격리됐다. 의료계에선 “이번 싸움의 최대 난제는 의료 인력 확보 문제”라는 말이 나온다. 그러자 5700명 의사로 구성된 대구시의사회가 나선다고 한다. 개원의, 대학교수처럼 각자 생업에 종사하는 의사 10여명이 오늘부터 자원해서 의료 현장에 들어간다고 한다. 대한의사협회도 전국적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다. 고귀한 헌신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