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난치병으로 딸을 잃은 엄마 장지성씨가 VR로 딸 나연이를 만나는 모습.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사람을 가상현실(VR·Virtual Reality)에서 만날 수 있을까. 지난 6일 이를 현실화한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가 전파를 탔다. 3년 전 희소 난치병으로 숨진 딸 나연이를 VR을 통해 다시 만난 엄마 장지성씨 이야기. 관련 유튜브 영상은 20일 기준 조회 수 1450만회를 넘기며 큰 화제를 낳았다.

VR이란 무엇인가

다큐멘터리는 그간 침체됐던 VR에 관한 관심까지 함께 불러일으켰다. VR은 컴퓨터 기술을 기반으로 실제와 유사한 환경이나 상황을 만들어내는 기술. 이를 체험하려면 별도의 VR 기기를 착용해야 한다. 이번에 방영된 다큐멘터리에서도 장씨가 고글(HMD)과 장갑 형태의 VR 기기를 착용하고 가상의 딸을 만났다.

VR은 '신기술'로 여겨지지만, 사실 등장한 지 30여년이 지났다. 1960년대 미국 할리우드 영화 촬영기사가 유사 기기를 만들었고, 1980년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도 가상 환경을 만들어 우주비행사를 교육했다.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1990년대 매트릭스·공각기동대 등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VR을 본격적으로 다루면서부터다. 그러나 대중적 관심과는 달리 VR 제작 영화, 게임 등에서 킬러 콘텐츠는 탄생하지 않았다. 기기 착용의 불편감도 컸으며, 생각만큼 정교하거나 몰입감이 높지 않아 대중이 외면한 것이다.

VR 장비 쓰니 LA 식당이 눈앞에

지난 18일 오후 3시, SKT타워 내 5GX 서비스사업본부 회의실. VR 장비인 오큘러스 GO를 착용하니, 갑자기 눈앞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음식점이 펼쳐졌다. 미국인 웨이터가 다가와 "어떤 음식을 먹고 싶냐"고 물었다. "추천해달라"고 하니, "해피 아워(오후 3~5시)에 맞춰 한정 판매하는 메뉴가 있다"고 했다. SK텔레콤이 지난해 4월 출시한 VR 영어회화 프로그램 '스피킷'이다.

스피킷은 실제 레스토랑과 유사한 가상 환경을 만들어, 마치 외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뿐 아니라, AI 빅데이터와 음성 인식 기술을 결합해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상황을 연출한다. 실제 웨이터와는 끊기지 않고 대화가 가능했다. 딥러닝 기술을 통해 특정 단어·문구가 나오면 대답하게 한 것이다. 오큘러스 GO는 무게도 468g에 불과해 10여분을 사용해도 무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미연 SKT 5GX 서비스사업담당 매니저는 "기존에는 음성 인식을 해도 반응이 잘 안 돼 동문서답하는 경우도 많았다"며 "스피킷은 사실감과 몰입감이 높아서 기존 어학 콘텐츠 대비 2.7배의 높은 학습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결과가 있다"고 했다.

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들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5G가 VR 콘텐츠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 보고 있다. VR 콘텐츠를 더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3D, 렌더링(빛 반사 등을 반영해 사실감을 불어넣는 기술) 등을 적용해야 한다. 자연히 콘텐츠가 고용량이 될 수밖에 없다. 기존 4G는 이를 전송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 매니저는 "디테일한 표현 기법들을 사용할수록 용량이 커지기 때문에 초당 전송해야 하는 데이터양이 어마하게 늘어난다"며 "5G는 이를 빠르고 끊김 없이 전달할 수 있어 VR 서비스를 완벽하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KT는 세계 최초 가상형 실감 음악 서비스 '버추얼 플레이(VP·Virtual Play)'를 출시했다. 걸그룹 마마무의 공연이 1인용 콘서트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8K 초고화질에 3D로 입체감을 높였고, 360도로 공연을 볼 수 있다.

재회 목적 VR 가능할까

그렇다면 '너를 만났다'처럼 재회 목적 VR 제작도 대중화될 수 있을까. 정답은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다. VR 업계 관계자는 "얼마나 정교하게 만드느냐의 차이가 있겠지만, 기술적으로는 국내 스튜디오들에서 만드는 데 큰 무리가 없다"고 했다. 기술보다는 오히려 윤리적 문제가 더 크게 남아 있다. 실제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가 전파를 탄 뒤 응원도 있었지만, 비판도 많았다. 재회에 이어 또다시 이별을 겪은 어머니의 심리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