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있는 치킨집 '디떽'의 주방에 들어서자 튀김솥 앞은 연기로 자욱했다. 닭을 튀긴 기름이 섞인 유증기(기름방울이 안개 형태로 공기 중에 퍼져 있는 상태)로 매캐하고 혼미한 상황. 튀김솥 위의 레인지 후드(주방용 환풍기)가 있는 부위에 치킨을 튀기는 로봇(이하 치킨 로봇)이 달려 있었다. 이 로봇은 180도를 돌아 뒤에 있는 조리대로 향했다. 팔 끝에 달린 손으로 닭다리가 담긴 철제 바구니의 손잡이를 집어 들었다. 다시 180도를 돌아 바구니를 아래로 내려 튀김솥에 넣었다. 13분 뒤 바구니를 꺼내 허공에 대고 기름을 세 번 턴 다음 다시 뒤로 돌아 조리대 위에 뒀다. 옆에서 치킨 양념을 만들고 있었던 직원이 로봇이 갓 튀겨낸 닭다리를 양념에 버무렸다.

치킨 로봇을 개발하고 디떽을 창업한 원정훈 대표는 "우리 주방에서 치킨 튀기는 일은 이 로봇이 다 한다"며 "가장 어렵고 위험한 일이지만 불평 한 번 안 한다"며 웃었다.

치킨집 ‘디떽’의 원정훈 대표가 치킨 튀기는 로봇의 매뉴얼을 누르고 있다. 튀김옷을 입힌 치킨을 바구니에 담아 조리대에 올려두면 치킨 로봇이 들어 올린 뒤 튀김솥에 넣는다. 다 튀기면 다시 조리대에 갖다 놓는다.

치킨 튀기는 로봇은 허술해야 한다?

대학 때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원정훈 대표는 치킨 로봇을 만들기 전까지 칼국숫집과 카페, 이동통신사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비대면 결제 시스템을 설치하는 일을 함께 했다. 2017년 배달대행업체에 이 결제 시스템을 판매하러 갔다가 치킨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치킨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산업재해'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유증기로 인한 폐질환과 화상이 만만치 않다고 했다. '그런 환경에서 하루 몇백 마리의 닭도 튀겨내는 사람들이야말로 로봇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미국의 한 카페에서 로봇이 커피를 내려 서빙하는 동영상을 봤다. "로봇이 커피를 나르거나 청소를 할 게 아니라, 치킨을 튀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 대표는 국내 개발자 다섯 명을 모아 경남 창원에 직접 연구소를 차렸다. 초반에는 정교한 로봇을 만들면 되는 줄 알았다. 문제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치킨집의 주방은 사람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반(半)자동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닭이 담긴 바구니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자리에 놓을 수가 없다. 바구니가 제 위치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치킨 로봇이 손잡이를 놓칠 수 있다. 결국 허술한 인간에게 로봇을 맞추기로 했다. 원 대표는 "0.1㎝짜리 구슬을 집어내는 집게를 만드는 게 아니라 폭 1㎝짜리 손잡이를 잡을 수 있는 집게를 1.8㎝까지 넓게 벌리는 게 관건이 됐다"며 "로봇 전문가가 볼 때 치킨 로봇은 좀 허술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로봇이 단골까지 만들어주진 못한다

2018년 말 치킨 로봇 개발을 마치고 지난해 4월 대구에 치킨집을 열었다. 치킨 로봇이 주목받게 된 것은 지난여름 대구 치맥페스티벌 때였다. 푸드 트럭에서 로봇 두 대와 직원 한 사람이 하루 900마리의 닭을 튀겼다. 다른 치킨집에서는 여섯 사람이 그와 비슷한 양을 팔았다. 한 사람이 닭 100마리를 튀길 때 치킨 로봇은 300마리를 튀길 수 있다. 그는 이 점을 어필하기 위해 1만2900원짜리 무한 리필 메뉴를 도입했다.

평일 오후 4시쯤 디떽 매장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남자 손님 16명이 있었다. 강형택(20)씨는 "가성비가 좋고 빨리 나와서 친구 여럿이서 먹을 때 여기로 오게 된다"고 했다. 로봇이 튀긴 치킨은 어떤 맛일까? 로봇이 튀겼다고 알려주지 않으면 전혀 몰랐을 정도로 맛의 차이는 없다. 원 대표는 "부위별로 시간에 맞춰 튀기기 때문에 설익을 염려가 없다"고 했다.

최근에는 한 유명 치킨 프랜차이즈에서 "닭 튀길 사람을 찾기 어렵다. 우리 회사를 위한 치킨 로봇을 개발해달라"며 원 대표를 찾았다. 원 대표에 따르면 현재 3000만~4000만원 정도 하는 치킨 로봇의 가격이 곧 2500만원까지 떨어질 예정이다. 이미 프랑스의 한 식당에서 치킨 로봇 한 대를 사갔고, 오는 4월 김해에 디떽의 두 번째 매장을 연다.

원 대표는 자신의 매장에 키오스크(무인 주문·계산대)를 설치하지 않았다. 주문과 계산은 직원이 한다. 그는 "치킨을 로봇이 튀기든, 사람이 튀기든 맛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접객에는 차이가 있다. 아무리 요즘 사람들이 비대면을 선호한다고 해도 직원들이 한 번 왔던 손님을 알아보면 좋아한다. 로봇은 단골을 못 만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