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 뻔하지요."

시작은 이 한마디였다. 송천오(60) 신부는 10년 전 보육 시설에 있던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으로부터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 충격받았다"고 했다. 겨우 열두 살인 소녀는 이미 삶이 아닌 생존을 걱정하며 자포자기하고 있었다. 2011년 보육 시설 어린이 30여명으로 송 신부가 '노비따스 합창단'을 만든 계기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변화했다. 자존감을 갖기 시작했고, 공부에 대한 의욕도 보였다. '신부님이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어요'라는 편지도 받았다. '어른으로서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학교'를 생각했다. 베네수엘라 빈민 청소년을 교육시켜 명문 오케스트라로 키운 '엘 시스테마'도 떠올렸다. 3월 초 경기 가평에 문을 여는 '노비따스 음악 중·고등학교'는 그렇게 탄생했다. 라틴어로 '새로움'을 뜻하는 노비따스(novitas)라는 이름은 합창단 시절 아이들이 골랐다.

5년 반 동안 서울대교구 106개 성당을 돌며 모금한 '노비따스 음악학교' 송천오 교장 신부. 그는 "23일 신천동성당을 시작으로 운영비 후원을 위해 다시 성당 순회 '앵벌이'에 나선다"며 웃었다. 29일엔 염수정 추기경이 주례하는 축복식이 열린다.

2014년 서울대교구 서울가톨릭청소년회 산하 단체로 승인받고 본격적으로 학교 설립에 뛰어들었다. 6개 학년에 학년당 12~15명, 전원 학비 무료에 기숙사를 제공하는 목표였다. 의욕은 충천했지만 무일푼이었다. 5년 반 동안 조감도 한 장 들고 서울대교구 산하 성당 232곳 중 106곳을 돌며 '앵벌이'했다. 송 신부는 서울 봉천동 쑥고개성당 모금 때 일화를 잊지 못한다. 재래시장 노점상 할머니가 '노비따스' 이야기를 듣더니 그날 번 돈을 통째로 내놨다. 송 신부는 "봉투 속에서 동전이 짤랑거리는데 차마 액수를 세보지 못했다"며 "'이런 귀한 돈을 받아도 되나' 하는 죄책감과 금액을 넘어선 깊은 사랑을 동시에 느꼈다"고 했다. 1만원짜리 후원자가 가장 많았다. 미르철강은 10억원어치 철근을 기부했고, 코스모스악기는 그랜드피아노 10여대를 비롯해 오르간, 관악기, 현악기 등을 후원했다.

본관동, 음악동, 기숙사 등 2000평 규모 학교 건물은 송 신부의 표현처럼 '작지도 크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않다'. 배려의 흔적은 곳곳에 역력하다. 화장실 안내 표지부터 전등갓과 창문 배치까지도 세심하다. 고급 자재를 싸게 구하기 위해 재료상을 돌며 발품을 팔았다. 520석 음악당, 리허설룸, 개인 연습실을 갖췄고 카페도 만들었다. 기숙사는 2인 1실. 관현악, 성악, 작곡을 모두 배울 수 있다.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지난 연말 중학교 1학년 신입생 12명을 선발했다. 음악에 재능이 있거나 음악으로 인생을 개척해보려는 여학생들이다. 매년 10여명씩 신입생을 받아 6개 학년을 다 채울 예정이다. 여건이 마련되면 남학생으로도 문호를 넓힐 생각이다. 졸업생을 모두 음악가로 성공시키는 게 목표는 아니다. 송 신부는 입학할 학생들을 '자갈밭에 떨어진 씨앗'에 비유했다. "우리 사회는 빈부 격차보다 희망 격차가 더 심각합니다. 노비따스를 통해 아이들에게 희망 격차를 줄여 잠재된 영감, 상상력, 창의력을 키워주고 궁극적으로 꿈을 회복하도록 돕겠습니다."

송 신부는 학생들에게 결정권을 상당 부분 넘길 생각이다. 기숙사 생활 규칙 등을 정할 때 학생과 교사, 교직원 그리고 교장인 송 신부까지 똑같은 '1표'를 행사할 계획이다.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고 책임까지 지면서 자신감을 얻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노비따스'를 준비하면서 송 신부가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신부님 참 단순하시네요'였다고 한다. "세상일이 복잡한 것 같지만 단순하게 보면 쉽게 풀립니다. 이 아이들도 인격이 있는 생명체라고 보는 것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관리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로 보며 살아갈 생각입니다. 끝까지 들어주고 믿고 기다려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