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가 사라졌다. 우한 폐렴(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약국·편의점에서 일회용 마스크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그나마 남은 마스크는 값이 3~4배가량 뛰었다. 마스크 유통 현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유통 판매상들은 "전쟁통이나 다름없다"고 입을 모았다. 마스크 품귀 현상에 ‘마스크 구하기 전쟁’에 뛰어든 이커머스 기업 ‘쿠팡’의 헬스·퍼스널케어 카테고리 정기동(39) 리더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오늘 입고 물량 50만장' 보고에 비상체제 선포
오전 6시 50분 기상.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에 둔 스마트폰을 집어들고 쿠팡 사이트에 접속한다. 먼저 마스크나 손 소독제 행사 제품들이 제대로 인터넷에 노출됐는지 확인한다. '오케이.' 문제없이 노출된 걸 확인하고, 그제야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인천광역시 쿠팡 물류센터에서 직원이 마스크 등 물품을 분류하고 있다.

오전 7시 50분 출근길. 마포역 인근 집에서부터 잠실 본사 사무실까지는 약 50분이 걸린다. 지하철에선 ‘신종 코로나’ 관련 뉴스를 훑고, 전날 입고량과 판매량 등 어제 실적을 살핀다. ‘오늘은 여기랑 저기서…’ 머릿속으로 오늘 어디서, 얼마만큼 마스크를 떼와야 할지 대강 그려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사가 멀다고 툴툴거리기 일쑤였는데, 이젠 50분 ‘순삭’(순식간에 삭제됨)이다. 오늘도 잠깐 딴생각을 하다 잠실역을 그냥 지나칠 뻔했다.

오전 8시 50분.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BM(브랜드 매니저)들과 팀장들이 달려와 업무 보고를 시작한다. 지금 맡는 개인생활용품·건강용품 카테고리 내 팀원은 총 10명. 생리대·기저귀·구강·바디 용품 등 다양한 품목을 담당하지만, 이번 사태 이후 전 팀원이 마스크·손 소독제·손 세정제 업무에 투입돼 전력투구 중이다. 특히 물건 받아오는 일을 전담하는 헬스케어 담당 세 명은 어째 날이 갈수록 얼굴이 부스스해진다.

오전 업무보고의 핵심은 ‘오늘 입고될 물량’. 마스크는 하루 평균 50만~100만 장 정도 들어온다. ‘우한 폐렴’ 사태가 벌어지기 전보다 몇 십배 증가한 수준이지만, 이 역시 어렵사리 구한 ‘소중한 마스크님’들이다. "당일 입고 물량 50만장 안팎밖에 안되는데요." 한 BM의 말에 오늘은 ‘비상 체제’를 선포한다. "점심 전까지 빨리 전화 돌립시다, 전화!" 때론 옆 팀에서 메신저를 보내 ‘마스크 공급업자 찾았다’며 연락을 주기도 한다.

◇마스크 생산업체 앞에서 판매상 100여명 '뻗치기'
현재 전국에 있는 마스크 제조업체는 120여 곳 정도. 마스크를 가진 공급업체라면 모두 우리 팀 '접촉 대상'이다. 물량 공급이 가능한, 정상 가동 중인 제조사 20여 곳 정도 전화를 돌리다가 '마스크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곧바로 출동한다. 당장 찾아가지 않으면 딴 곳과 계약하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마스크 제조업체 사장 사무실 앞에서 우리 같은 유통업자, 도매업자, 온라인 판매상 100여 명과 함께 줄을 서서 1시간 동안 기약 없는 '뻗치기'를 한 적도 있다.

이 시국엔 마스크 제조업체가 갑(甲)이다. 온갖 ‘감언이설’로 설득해야만 한다. "이번 사태 끝나고도 저희랑 장기적으로 거래하시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이커머스 기업입니다" "저희랑 같이 하시면 장기적으로 브랜드 홍보 효과도…." 일부 업체 사장은 "그나마 쿠팡이니까 만나준다"고 거드름을 피우기도 한다. 다른 곳보다 매입량이 많은 덕택에 기나긴 줄에서 "쿠팡 먼저 들어오라"는 얘기를 듣는 건 불행 중 다행. 우리보다 오래 기다린 다른 바이어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오후 1~2시쯤 회사로 들어와 구내식당에서 브리또를 우겨넣었다.

◇종일 고생해 확보한 물량, 5분이면 매진
오늘 오후엔 마스크 부자재 MB(Melt Blown) 업체와의 미팅을 잡아놨다. 거래 중인 마스크 제조업체 외에도 새로운 공급망을 찾기 위해서다. "최근에 납품은 어디로 하셨나요" 은근슬쩍 떠보고 해당 제조업체를 연락하는 식이다. '부자재가 없어서 생산을 못 하고 있다'는 제조업체들 말이 맞는지, 제조업체들이 부르는 가격이 맞는지 등 업계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인 측면도 있다.

어제는 기존 거래처 사람들을 만나 미팅을 가졌다. 유한킴벌리, 애경 등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 "우리한테 조금만 더 달라"고 우는 시늉을 해보기도 한다. 쿠팡에 떨어지는 할당량을 조금이나마 더 늘려보려는 시도다. 이렇게 어렵게 구해온 몇 억원어치 마스크들은 5분 이내에 다 팔려나간다. 상황이 급하게 돌아가는 날은 발주팀과 하루에 수십통 전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오후에 당장 차를 보내 물건 받아온 다음, 바로 물건을 올려 파는 경우도 있다.

저녁 7시. 남은 팀원들과 회사 앞에서 부대찌개를 먹었다. 회사 식당 밥은 질렸지만, 그렇다고 멀리 나갈 시간이 없다. 회사 근처에서 국밥, 냉면, 설렁탕처럼 금방 먹고 들어올 수 있는 메뉴로 배를 채운다. 이후부턴 오늘의 물량 점검 및 내일 수급 가능한 물량을 확인하고, 웹상에 올라온 상품 이미지 구현이 제대로 됐는지, 검색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팔리고 있지 않은지 등을 확인하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밤 11시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여설살 딸이 아빠를 보고 자겠다며 칭얼대고 있다. 딸을 안고 다독이는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새벽 1시 전에 자리에 누워, 내일도 ‘마스크 전쟁통’에서 보낼 하루를 생각하다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