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편지를 보내왔어요. 마지막 문장에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 쉬어라. 대신 좀만 쉬어라. 나도 그렇고 다들 차기작 기다린다'고 쓰여 있었습니다.(웃음)"

미국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감독상 등 4개 부문 상을 따낸 영화 '기생충' 팀이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이정은·이선균·조여정·박소담·장혜진·박명훈, 제작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공동 각본가인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양진모 편집감독 등이 함께 참석했다.

아카데미 네 부문 상을 휩쓴 ‘기생충’ 팀이 19일 오전 서울 소공동에 모였다. 뒷줄 가운데부터 시계 방향으로 봉준호 감독, 한진원 작가, 이하준 미술감독, 배우 박명훈·이정은·조여정,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배우 박소담·장혜진·이선균, 양진모 편집감독, 배우 송강호.

이날 봉 감독은 아카데미 캠페인에 얽힌 뒷얘기부터 들려줬다. "북미 배급사 '네온'은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중소 배급사였고, 우리는 넷플릭스 같은 회사에 비하면 훨씬 적은 예산을 가지고 게릴라전처럼 뛰었다. 인터뷰만 600차례 이상, 관객과의 대화도 100회 이상 했다." "비행기 타고 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기내식을 겨우 먹고 10시간 내내 잤다. 생각을 정리할 여유 같은 건 없었다"고 했다. "오랜 강행군으로 번아웃 증후군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얘기에 봉 감독은 "2017년 '옥자'를 찍고 나서 번아웃 판정을 이미 받았다"고 했다. "그래도 '기생충'이 너무 찍고 싶어서 영혼까지 긁어모아서 찍었다. 이제 좀 쉬어볼까 했는데, 스코세이지 감독님이 쉬지 말라고 하셔서…." 폭소가 터졌다.

봉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을 두고 "로컬 영화제"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었다. "아카데미를 도발하려고 한 것이냐"는 질문에 "아카데미상 캠페인을 처음 하면서 무슨 도발씩이나 했겠느냐. 영화제 성격을 칸이나 베를린 같은 국제영화제와 비교하다가 로컬이라고 말한 건데, 그게 트위터로 많이 퍼져나갔다"고 했다.

봉준호 감독은 "미국 현지에서 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고도 했다. "이정은 배우를 두고 '오리지널 하우스 키퍼(원래 있던 가정부)가 누구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미국배우조합상(SAG) 시상식 입장 때 톰 행크스가 이정은 배우를 보고 반가워하면서 질문을 길게 했다. 길거리에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만난 적도 있는데, 이때 그는 10여분간 '조여정 캐릭터가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송강호는 "아카데미에서 상 받을 때마다 너무 기뻤지만 표현을 자제하려고 했다"고 농담했다. "칸 영화제 때 감독님이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 너무 격하게 껴안아 감독님 갈비뼈에 실금이 갔다. 그래서 이번엔 자제했다. 감독님 얼굴과 목 정도만 껴안았다."

봉준호 동상을 세우고 생가를 보존하겠다는 각종 '봉준호 마케팅' 정책이 정치권에서 나온다는 얘기엔 봉 감독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런 얘기는 제가 죽은 후에 해주셨으면 좋겠다.(웃음)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가리라고 생각한다."

'기생충'은 미국 방송국 HBO와 손잡고 드라마로도 만들어진다. '빅쇼트' '바이스'의 애덤 매케이 감독이 봉 감독과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다. 봉 감독은 "틸다 스윈턴 등이 캐스팅됐다는 보도도 봤는데 사실이 아니다. 확정된 건 없다"면서 "'체르노빌'처럼 대여섯 개 에피소드를 완성도 높게 만드는 소위 리미티드 시리즈로 제작될 것 같다"고 했다. 봉 감독은 또한 "두 편의 (영화) 차기작은 몇 년 전부터 준비해왔다. (차기작을 잘 만드는 것이) 제가 감독으로서 영화산업에 할 수 있는 최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