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12년 12월 2차 집권을 시작한 후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각종 스캔들에도 버티던 아베 내각 지지율이 최근 40% 아래로 떨어졌다.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고 감염 경로조차 알 수 없는 우한 폐렴이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일본 국민의 불만이 아베 총리를 향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덕성 등 여러 문제가 있었음에도 7년 넘게 아베 정권을 유지시켜온 것은 단연 경제였다. 정부가 돈을 적극적으로 푸는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통해 일본을 긴 경제불황의 터널에서 벗어나게 했다. 일본의 국가부채가 1000조엔을 넘어서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경기가 살아나면서 '잃어버린 20년'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지난 16일 발표된 지난해 4분기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마이너스 1.6%를 기록했다. 5분기 만의 역(逆)성장이다. 지난해 10월 소비세를 8%에서 10%로 인상한 것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미·중 무역 갈등의 여파로 수출과 수입도 다 감소했다. 문제는 우한 폐렴 사태로 경제가 1분기에도 좋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NHK방송은 "우한 폐렴 확산과 외국인 관광객 감소 등으로 올 1분기에도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했다.

일본 전역에서 우한 폐렴이 확산하면서 아베 정권에 대한 불만은 폭발 직전이다. 17일 현재 요코하마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에서 발생한 환자 542명을 포함한 일본 내 감염자는 615명이다.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의 감염환자 중 3분의 2에 해당한다. 아베 내각은 우한 폐렴에 대해 안이하게 대응하다가 13일 첫 사망자가 발생한 후에야 상담창구를 늘리고 "불요불급한 모임은 삼가 달라"고 하고 있다.

15~16일 실시된 아사히신문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우한 폐렴 대응이 충분하지 않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50%였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응답자는 34%에 불과했다. 특히 응답자의 85%는 "우한 폐렴이 일본에서 확산할 것이라는 불안을 느낀다"고 답해 아베 정권에 대한 불신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마스크를 쓴 많은 시민이 18일 일본 도쿄 거리를 걷고 있다. 최근 우한 폐렴이 일본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초기 대응에 실패한 아베 신조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현지 신문과 방송이 보도했다.

국회에서 매일같이 아베 총리가 '벚꽃을 보는 모임(벚꽃회) 스캔들' 때문에 추궁당하는 것도 지지율 하락의 한 요인이다. 이 스캔들은 매년 도쿄 신주쿠교엔(新宿御苑)에서 세금으로 주최해 온 벚꽃회에 아베 총리와 정권 핵심 인사들이 자신의 후원회원 등을 대거 초청해 왔다는 의혹이다. 이외에 자민당 전·현직 의원 10여 명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복합 리조트 사건' 등으로 여론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아베 정권은 친분이 있는 대학 이사장에게 특혜를 준 '학원(學園) 스캔들'로 2017년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당시 지지율이 30% 후반대로 하락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민생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어서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당시는 경제가 활황이어서 국민적인 관심사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경제가 하강하고 우한 폐렴이 언제 나를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전 국민 사이로 확산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1차 정권 당시 1년을 포함해 지금까지 8년 2개월간 총리로 재임하고 있는 '역대 최장(最長) 총리'다. 일본인들 사이에선 "그가 이젠 지겹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 탓에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40% 선이 붕괴하고 있다. 일본에서 우한 폐렴 사망자가 처음 나온 후 지난 15~16일 실시된 민영방송 네트워크 ANN 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39.8%로 40% 선이 깨졌다. 지난달보다 5.6%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이에 앞서 나온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도 내각 지지율은 41%를 기록, 지난달보다 8%포인트 하락했다.

일본 사회 일각에서는 경제가 회복되고 우한 폐렴이 단기간 내에 수습되지 않으면 아베 총리가 반전(反轉) 카드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