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액 전자책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가 김영하의 신작 소설 ‘작별 인사’를 공개했다. 월 1만5900원을 내면 전자책 서비스와 함께 김영하 신작을 종이책으로 배달해준다. 서점에서는 몇 달 뒤에야 만나볼 수 있다. 스타 작가가 7년 만에 발표하는 장편소설을 서점보다 앞서 플랫폼을 통해 공개하면서 논란도 뒤따랐다. 회원 가입과 구독을 해야만 책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독자의 접근을 제한한다는 비판이다.

비판이든 환호든 김영하의 신작 소식은 출판계의 화제가 됐다. 작가 입장에선 독자와 만나는 창구를 늘릴 수 있고 입소문까지 났으니 충분히 성공적인 마케팅이다. 떠들썩했던 소설 '작별 인사'가 15일 공개됐다. 인간과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가 일반화된 미래를 그렸다. 우리나라는 통일이 됐고 낙후된 북한을 개발하기 위해 평양을 휴머노이드 특화 도시로 지정한다. 평양의 로봇 연구소에서 태어난 소년 '철이'가 주인공. 반려동물을 등록하듯이 정부는 '휴머노이드 등록법'을 통과시키는데, 어느 날 철이는 미등록 로봇이라는 이유로 어디론가 납치된다. 17년 동안 인간으로 살아왔는데 내가 로봇이라니!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인간과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성장 스토리다.

김영하 작가가 모델로 나오는 월정액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의 광고. 지난 15일 김영하 작가는 7년 만의 신작 장편을 밀리의 서재를 통해 선공개했다.

줄거리만 본다면 참신하지는 않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를 다뤘던 수많은 작품이 떠오른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국내외 SF 소설과 '블랙 미러' 같은 SF 드라마를 자주 본 독자라면 초반에 크게 실망할 수 있다. 김영하가 쓴 SF가 처음도 아니다. 2010년 김영하가 쓴 단편 '로봇'에는 자신이 로봇이라고 믿는 괴상한 남자가 등장한다. 사랑에 빠지면서 로봇의 원칙이 충돌하는 소설로 그 단편 역시 온라인으로 선공개됐다.

그러나 기발함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는다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에게는 쉴 새 없이 위기와 시련이 닥치고 빠른 속도로 디스토피아가 펼쳐진다. 청각 장애인과 노인들을 위한 기계로, 반지를 끼면 주변 사람들의 머리 위에 말풍선이 뜨는 '말풍선 발생기'처럼 소소한 아이디어를 읽는 재미도 있다.

소설에선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차이로 '마음'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윤리적으로 설계된 로봇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탐구한다. 물성(物性)은 사라지고 모든 일상이 디지털 클라우드로 옮겨간 21세기를 "모든 인간의 삶은 수증기처럼 증발해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어딘가에 뭉게뭉게 피어 있었다"고 묘사한 것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읽다 보면 전자책에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고 납득하게 된다. 최근 tvN 다큐멘터리 'Shift―책의 운명'에 출연한 김영하는 종이책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온종일 많은 사람이 가치 있는 정보를 종이로 찍지 않고 디지털로만 생산하고 있어요. 결국 디지털로 만들어진 또 다른 책, 더 넓은 의미의 책도 저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출판계에서도 변화의 흐름은 받아들이지만, 과도한 스타 작가 마케팅에는 눈살을 찌푸린다. ‘요즘도 책 사러 서점 가요?’라는 ‘밀리의 서재’ 광고 문구가 기름을 부었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동네 서점과의 상생을 말하던 작가가 ‘요즘 서점 누가 가요?’라는 광고를 찍으니 배신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태훈 문학평론가는 “새로운 독서 인구를 창출하는 게 ‘밀리의 서재’의 목표라면 이미 수십만 부를 팔 수 있는 작가보다는 실험적이고 재밌는 작가를 발굴하는 게 맞지 않을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