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보스턴의 공영 방송인 WGBH-TV에서 네 시간 동안 백남준(白南準· 1932~2006)의 ‘비디오 공동체’를 방영했다. 그가 동영상 편집기인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개발한 다음, 실험 영상을 생방송으로 송출한 첫 이벤트였다. 제목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네 시간 동안 비틀스의 음악이 나오는 가운데, 현대무용과 다양한 퍼포먼스가 총천연색의 다채로운 영상과 뒤섞여 화면 위로 흘러갔다. 한 시간 뒤 ‘이것은 참여형 TV’라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시청자들에게 가만히 앉아서 보기만 하지 말고, TV의 색상 조절 다이얼과 볼륨 다이얼 등을 맘대로 돌려서 자기만의 화면을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초보 수준의 참여에 불과하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시청자 입장에서 방송 화면에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다.

백남준, 비디오 공동체: 처음부터 끝까지 비틀스, 1970년, 240분, 컬러 동영상과 음향.

백남준은 집집마다 거실 중앙을 차지하고 수백만의 시청자들을 그 앞에 묶어두는 TV의 위력을 가장 먼저 간파하고 예술의 도구로 활용했던 미술가였다. 그는 권력층의 소수가 다수의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존의 TV를 벗어나, 누구나 참여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쌍방향 TV를 꿈꿨다. 식민지에서 태어나 전쟁을 겪고 변방의 작은 나라 국민으로서 서방 세계를 누비던 백남준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그때도 열린 소통을 통해 차이를 이해하면 분쟁이 없는 글로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예언대로 지금은 1인 방송 시대다. 분쟁이 사라졌는지는 모르나, 과거라면 감춰졌을 소수 의견도 여과 없이 전파를 탄다. 선지자 백남준을 만든 건 예언의 능력이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든 좋아질 거라는 순수한 믿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