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얼마 전 몇십 년 만에 도쿄타워에 다시 올랐다. 그곳에서 바라본 도쿄는 온 사방이 대형 공사판인 듯했다. 주변에 초고층 건물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타워 자체가 묻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긴 지난 30여 년 동안 도쿄에서는 100m 이상 빌딩이 50개에서 500여 개로 늘어났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도심 회귀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작금의 도쿄는 도시 전체가 중심업무지구(CBD)로 바뀌는 양상이다.

이는 2000년대 초에 착수한 '도시 대개조' 사업의 중간 결과다. 전후 고도성장기 도쿄의 주요 기반시설은 1990년대 들어 노후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무렵에 찾아온 일본의 장기 불황은 거의 모든 도시 개발을 중단시켜버렸다. 이에 고이즈미(小泉) 정부는 '도시 재생특별법'을 제정했다. 마침 이시하라(石原) 도쿄도지사의 당선으로 수도 이전 논의도 백지화됐다. 목표는 국가 경제 활성화와 도시 경쟁력 제고였다. 2009~2012년 민주당 집권기에도 멈추지 않았던 '고이즈미 도시 재생'은 현재 아베(安倍) 정권하에서 차츰 결실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선택은 도시계획 규제 완화와 민간자본의 적극 활용이었다. 용적률 확대나 공중권 매매를 통해 (재)개발은 훨씬 유연해졌고, 시장경제의 힘을 빌리기에 복지 예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기업 측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도시 건조 환경이 절실했다. 글로벌 시대의 국운(國運)은 육해공(陸海空) 모빌리티 혁명이 좌우한다는 인식도 공유했다. 이런 마당에 2020년 올림픽 유치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이 되었다. 2014년 '도쿄도 장기 비전'을 수립한 일본은 수도권 부흥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세계 제1의 도시'가 최종 꿈이다.

일본은 '세계 제1의 도시'를 가져본 역사적 경험이 있다. 18세기 에도(江戶)는 인구 100만명으로 세계 최대 도시였다. 무도(武都)임에도 도시 생활의 실제 주인공은 상인, 쇼쿠닌(職人·장인), 초닌(町人·상공계급)일 정도로 에도는 경제 도시였다. 황무지 에도가 세계적 대도시로 성장한 것은 에도 막부 집권 세력의 장기 구상 때문이었다. 대규모 수리(水利) 공사와 기간(基幹) 인프라 구축도 전격적이었지만 화폐경제 도입을 통한 상업 활동과 시장 형성의 촉진이 특히 기발했다.

14세기 말에 등장한 조선의 수도 한양 역시 계획도시였다. 하지만 한양의 도시계획 원리는 에도의 경우와 달랐다. 여기서 강조된 것은 풍수지리 및 '주례(周禮)'에 입각한 성리학적 이상향이었다. 왕도(王都)였던 한양은 사회구성 측면에서 양반과 노비로 양분된 신분 도시였다. 도시의 존재 이유를 공맹(孔孟)의 도를 실천하는 데서 찾은 만큼 상공업은 천시되었다. 그만큼 한양의 지배적 도시관은 좋게 말해 도덕적이었고, 나쁘게 말해 위선적이었다. 한양은 20세기까지도 인구가 20만명 정도에 머물렀고 종국에는 일본의 식민지 수도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2013년에 '도시 재생법'을 만들었다. 현재 서울은 '서울형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을 걸고 도쿄 못지않게 열심히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서울의 도시 재생은 물리적 성과 면에서 괄목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대규모 개발과 건설을 죄악시하는 가운데 이념 도시 한양을 연상케 하는 관념주의와 원리주의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포용·상생·공정·사람·생태 등과 같은 탈물질주의 도시 담론이다. 민족정기를 되살린다는 명분의 도로 정비, '촛불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취지의 광장 사업도 공연(空然)하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행복을 지켜주는 일은 시정(市政)의 주요 책무다. 하지만 도시, 특히 대도시는 경쟁을 통한 혁신 공간으로서 문명의 창구이자 국부(國富)의 원천이기도 하다. 오늘날 도쿄뿐만 아니라 런던·뉴욕·파리 등 내로라하는 세계 도시들이 일제히 도시 공간 혁명에 매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의 도시 재생은 이제라도 장기·거시적 '도시 대개조' 방향에 더 큰 방점을 찍어야 한다.

게다가 우리 시대 최첨단 건축공법과 인문사회학의 결합은 물리적 개발과 삶의 질의 공존 가능성을 크게 높이고 있다. 선진국의 도시 재생 사례는 차량과 보행, 건물과 녹지, 전통과 미래, 인간과 기술, 토속 경관과 인공 경관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도시에 활기가 넘치고 도심에 사람들이 다시 모인다. 혹시 지금 서울은 다른 세계 도시들이 다 하는 숙제를 저 혼자 내팽개치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