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직권 남용'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 법원 안팎에서는 "예견된 결과"란 평가가 나왔다. 직권 남용은 이 사건 피고인들의 핵심 혐의 중 하나였다. 한 판사는 "김명수 대법원과 검찰이 '적폐 판사 몰이'를 하느라 범죄가 될 수 없는 행위를 형사사건화했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법원행정처나 형사수석부장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로 소송 당사자의 권리를 침해하더라도 전혀 처벌할 수 없다는 기이하고도 위험한 결론"이라고 반박했다.

◇재판부 "직권 없으니 남용 처벌 안 돼"

재판부는 임성근 부장판사가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으로 재직할 때 재판에 관여했던 행위 자체는 인정했다.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해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산케이신문 가토 지국장 사건, 민변(民辯) 변호사 집회 관련 사건, 프로야구 선수 A씨의 도박 사건 등 3건의 재판이었다. 가령, 산케이 지국장 사건의 경우 임 부장판사는 담당 재판장에게 '의혹이 허위'라는 중간 판단을 요청하고 판결 이유를 수정하게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違憲)적인 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에게는 재판에 관여할 직무 권한이 없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직권남용죄의 독특한 구조 때문이다. 형법 123조 직권남용은 '직무 권한(職權)'을 '남용'해야 하기 때문에 직권이 없으면 남용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에게 상속세 절감 방안 등을 검토하도록 한 직권남용 부분은 대통령의 직무 권한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죄가 선고됐었다. 재판부는 징계 대상은 되지만 죄형법정주의 원칙상 처벌은 어렵다고도 했다.

이날 판결로 법원 내부에서는 검찰 수사와 이에 협조한 김명수 대법원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한 고위 법관은 "법원 내부에서 징계 등으로 정리할 수 있는 문제를 대법원이 무리하게 수사 의뢰했다"고 했다. 또 다른 판사는 "검찰은 재판 업무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법원 내부의 의사소통을 저인망식으로 수사했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받았다면 보완해 항소심에서 뒤집을 수 있지만 이번 같은 경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검찰 "사법행정 지휘권 남용한 재판관여 맞다"

재판부는 이날 "형사수석부장에게 재판 관련 직무 권한이 있다는 검찰의 해석론은 합법적 재판 개입의 통로를 마련해 법관 독립을 형해화한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형사수석부장이 소속 법관의 재판에 개입할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면서도 "그러나 이번 사건은 형사수석부장이 사법행정상 지휘·감독·지시·명령권을 남용해 판결이유 수정 등 위헌·위법적 지시를 함으로써 법관의 독립을 중대하게 훼손한 것"이라고 했다. 검찰은 "상대방에게 사실상 의무 없는 일을 시켰다면 직권남용죄에서 말하는 '직무 권한'이 있는 걸로 본다는 게 확립된 판례"라고도 했다. 한 검찰 간부는 "순전히 법원을 위한 무죄 선고"라고 했다.

이처럼 법원과 검찰이 맞서는 가운데 법조계 일각에서는 '법 왜곡죄'를 신설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2018년 독일 형법을 차용한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법관이나 검사가 재판 또는 수사 중인 사건의 처리에 있어서 법을 왜곡해서 당사자 일방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든 때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법 왜곡' 개념이 모호해, 패소한 사람들이 판사를 고소하는 사건을 양산할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