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를 사칭한 보이스피싱(전화 금융 사기)에 당해 수백만원을 잃은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20대 취업 준비생의 아버지가 "관련자들을 엄벌에 처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냈다.

일러스트=정다운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내 아들 죽인 얼굴 없는 검사 김민수 잡을 수 있을까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아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청원한다"며 사건의 경위를 상세히 적었다.

글쓴이에 따르면 전북 순창에서 취업을 준비하던 아들 A(28)씨는 지난달 20일 자신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 김민수’라고 소개한 한 남성의 전화를 받았다. 이 남성은 "최근 금융사기단을 붙잡았는데 당신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한 사실을 발견했다"며 "사건의 가담자인지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니 통화에 협조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사에 불응하거나 전화를 끊으면 공무집행방해죄로 징역 및 벌금형을 받게 되고 전국에 지명수배령이 내려진다"고 협박했다. 상대는 검찰 출입증과 명함 사진까지 이메일로 보냈다.

A씨는 수화기 너머 남성이 "범죄 연루를 확인해야 하니 통장에 있는 돈을 인출해 주민센터 보관함에 넣어둬라"라고 요구하자, KTX까지 타고 서울 마포구 한 주민센터 인근의 택배함에 돈을 넣었다. 인턴 생활을 하며 모아두었던 420만원이었다.

이후 돈은 사라졌고, A씨는 남성에게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검사라던 그는 다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수사에 불응해 지명수배자가 된다’는 불안과 초조함에 시달리던 A씨는 설날을 하루 앞둔 지난달 22일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 옥상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난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A씨 아버지의 글.

글쓴이는 청원과 함께 아들의 유서도 공개했다. A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보이스피싱범이 진짜 검사인 줄 알았다고 한다.

A씨는 유서에서 "장례식은 간소하게 해달라"며 "제 물품이 주민센터 옆 보관함에 있는데 찾아올 걸 그랬다"는 말을 남겼다.

글쓴이는 "보통 이런 경우 피해자가 어리숙했다고 쉽게 판단하지만, 정부 통계에 따르면 한해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2만명에 달한다고 한다"며 "이들을 모두 운이 없었다거나 어리석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아들의 뜻에 따라 선량한 피해자가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며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집 보급과 예방 교육, 관련자 처벌 강화 등을 요구했다.

그는 "현재 직장 내에서 성희롱 예방교육, 심폐소생술 교육 및 안전교육이 의무화돼 있는데 보이스피싱은 이와 맞먹을 정도로 빈번한 사례에 비해 예방교육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초기 보이스피싱과는 달리, 최근에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30대 청년을 타깃으로 학자금이나 취업을 볼모로 하기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 예방교육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천지에 널려 있는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를 보고도 이 사회가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며 "가까운 이웃과 가족이 다시는 이런 분통한 죽음을 겪지 않도록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했다.

이 청원은 이틀 만인 14일 오후 현재 1만2000여 명의 동의를 받았다.

전북지방경찰청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순창경찰서에서 담당하던 사건을 지방청 지능범죄수사대로 이첩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관련 증거물을 확보해 피의자를 추적하고 있다"며 "수사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경위에 대해선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