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서 트럭 화물 운송 회사를 운영하는 로베르토 갈라르사(Galarza ·54·사진) 대표 집에는 싸다 만 짐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는 "가족과 프랑스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성 노동조합과 이 때문에 급등하는 인건비에 눌려 회사가 한계를 맞았기 때문이다. 3~4년 전 10만달러였던 회사 월 매출액은 지금 반 토막 났다. 작년 12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자택에서 만난 갈라르사 대표는 "20여 년간 회사를 유지해왔지만 이젠 한계"라고 했다.

그는 작년 운송노조 위원장에게서 기부금을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 협박에 가까웠다. 아르헨티나 최대 산별 노조인 운송노조는 이 회사 노조의 상급 조직이다. 기부하라는 곳은 프로축구 구단이었다. 운송노조 위원장은 아르헨티나 프로축구 구단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위원장은 좌파 정당인 정의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노조의 자금력을 앞세워 프로축구 구단 회장직에도 올랐다. 한국에선 기업주가 맡는 일을 그가 하는 것이다. 노조의 위상을 알려준다. 갈라르사 대표는 "요청을 거부하면 파업을 조장하기 때문에 응해야 했다"며 "마피아 같다"고 말했다.

총파업으로 툭하면 국가를 마비시키는 노조는 아르헨티나에서 대통령도 못 건드리는 최대 정치 세력이다. 1940년대부터 좌파 정치인들은 친(親)노동 정책을 남발하는 '노조 포퓰리즘'으로 노동자의 절반이 가입한 노조의 지지를 얻었다. 작년 말 취임한 정의당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당선 직후 달려간 곳도 최대 노조 단체인 노동자총연맹이었다. 그는 "노조는 새 정부의 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했고, 그 공언이 현실이 되고 있다.

갈라르사 대표는 재작년 운송노조에서 "물가가 올랐으니 노조 소속 직원 37명에 대해 통상 보너스 외에 3만페소(약 60만원)씩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회사 직원들의 평균 월급(4만페소)의 75% 수준으로, 연 2회 통상 보너스와는 별개였다.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르헨티나 의회에는 퇴직금과 자녀 수당을 두 배로 올리는 법이 상정돼 있다. 갈라르사 대표는 "법이 통과되면 사장보다 많이 버는 직원도 생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