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코드 미디어 디렉터

지난 3일 미국 아이오와주(州)에서 올해 11월 대선에 나갈 후보를 뽑는 민주당의 첫 번째 경선인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렸다. 일반 유권자도 참여하는 ‘프라이머리’와 달리 코커스는 당원만 참여한다. 코커스 방식은 특이하고 복잡하다. 표가 한 번에 결정되지 않고 보통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학교 체육관 같은 넓은 장소에서 후보 이름이 적힌 팻말에 줄을 서거나 투표용지에 지지 후보 이름을 적는다. 15% 미만 득표율을 기록한 후보가 나오면 2차 투표가 실시된다. 1차 때 15% 미만 후보에 투표한 사람은 2차 때 다른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 이런 식의 1·2차 투표가 전체 1700여개 투표소마다 독자적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지지율이 역동적으로 바뀐다. 룰도 복잡하고 집계할 숫자도 많다. 올해 민주당은 집계를 간편하고 빠르게 하겠다며 관리자 앱을 만들어 배포했다.

코커스 당일 저녁에 대형 사고가 났다. 앱에 로그인이 되지 않거나 오류가 발생했고, 문제가 생길 경우 대안으로 마련한 전화는 아이오와 전역에서 폭주하는 통화 시도로 불통이 되어버렸다. 보통 자정이면 나와야 하는 결과는 다음 날 아침에도 나오지 않았다. 집계를 시작한 지 24시간이 지나서야 일부 집계 결과가 나오는 초대형 사고였다. 경선 시작을 알리는 아이오와 코커스는 후보들이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기회다. 아이오와에서 시작해 뉴햄프셔, 네바다로 이어지는 바람몰이를 통해 대선까지 흥행을 이끌어 갈 수 있다. 그런데 두 번째 경선지로 넘어갈 때까지 정확하게 누가 승자인지 밝혀지지 않는 흥행 참패를 한 것이다.

앱의 오작동으로 인한 문제를 시인하는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이 제일 먼저 밝힌 내용은 '러시아의 개입은 아니다'였다. 왜일까. 미 연방수사국(FBI)은 작년부터 러시아가 2020년 대선에 개입을 시도할 것이라고 경고해왔고, 민주당이 코커스에서 사용할 앱을 검토한 많은 전문가는 "해킹 위험성이 있다"며 사용에 반대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오작동일 뿐 러시아의 개입은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민주당의 해명은 미국인들이 올해 대선에 갖는 불안감을 해소해주지 못했고, 오히려 그동안 우려했던 것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바로 선거 결과에 대한 불신 가능성이다.

일러스트=김성규

전문가들은 현재 미디어의 지형이 미국 대선을 일촉즉발의 화약고로 만들어놓았다고 진단하고 있다. 2016년 대선 때 러시아가 페이스북을 사용해 개입했다면 2020년에는 미국 내 정치 단체들이 4년 전 러시아가 사용했던 방법을 이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의 개입 시도도 훨씬 거세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용하는 방법의 핵심은 허위 정보(disinformation)의 확산이다. 과거에는 흑색선전이 TV광고로 나갔다면 지난 대선에서는 소셜미디어에서 특정 지역 유권자의 인종, 성별, 종교, 나이, 학력, 직업까지 고려한 정밀 타기팅으로 허위 정보가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의 한 기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페이스북에 가짜 계정을 만들어 놓고 트럼프 캠프를 팔로하는 실험을 했다. 매일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뉴스에 대한 해석이 주류 미디어와는 전혀 달랐고, 그런 소식을 접하다 보니 기자 스스로도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항상 뉴스를 접하는 기자도 정보의 진위를 알기 힘들다면 일반 유권자들은 완전히 왜곡된 정보를 흡수하면서도 눈치를 채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미국 의회에서는 페이스북에 허위 정보 확산을 막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지만 페이스북은 정치적인 주장은 진위를 가리기 어렵고 발언의 자유를 막는다는 이유로 개입을 거부하고 있다.

트럼프 진영이 애초에 소셜미디어 광고에 크게 의존했던 것은 선거 자금의 부족 때문이었다. 당시 가망성이 안 보이던 트럼프에게는 기부금이 모이지 않아 TV와 같은 전통적인 매체 홍보를 감당할 돈도, 전문가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저렴한 소셜미디어에 의지했는데 뜻밖의 큰 효과를 본 것이다. 그때 이후 소셜미디어에서 유권자 정밀 타기팅으로 재미를 보고 있는 트럼프 진영에서는 페이스북의 개입 거부를 싫어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민주당이다. '저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원칙을 지키자'는 주장과 그렇게 해서는 패배가 분명하니 상대와 똑같은 흑색선전, 허위 정보 정밀 타기팅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는 중이다.

전문가들이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일어난 사고와 비슷한 집계 문제가 격전지 선거구에서 발생하면 결과가 불리하게 나온 쪽에서, 혹은 러시아와 같은 선거 개입 세력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루머를 퍼뜨리고, 이는 유권자들이 결과에 불복하는 초유의 사태를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민주당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이기지 않으면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하는 루머를 잡을 방법이 없다고 보고 있다. 개표기 오류로 며칠 동안 승부를 알 수 없었던 2000년의 대통령 선거와는 차원이 다른 최악의 상황을 우려한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선거를 최대한 로테크(low-tech)로 진행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주별로 추진하고 있는 하이테크 투·개표 시스템의 도입을 보류하고, 물증이 남고 개입 위험이 적은 낡은 기술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테크에서 가장 앞선 나라에서 수십 년 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미국은 작년까지도 핵미사일 발사 시스템에서 1970년대 기술인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했다. 오래된 기술이라 복구도 쉽고 외부에서 침입할 방법도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무조건 최신 기술이 아닌, 용도에 꼭 맞는 기술이 가장 좋은 기술이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