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늘 계획이 있다"고 늘 자부해왔지만 자녀만은 계획 없이 덜컥 셋을 낳고 말았다. 자녀 하나를 대학 졸업시키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못해도 3억원쯤 된다는 통계대로라면, 나는 산술적으로 아이 양육을 위해서만 10억원 가까운 돈을 벌어야 한다. 외벌이인 나에게는 무모함 그 자체인 일을 벌인 것이다. 아이가 셋이라고 하니 재정 능력이 무척 좋거나,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매일 쉼 없이 먹어대는 열 살 된 왕자님과 이제 네 살인 쌍둥이 공주님들은 그 통계가 틀리지 않았음을 몸소 증명해주고 있다. 마흔 살의 어깨가 천근만근이다.

하지만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이 기쁘고, 투자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즐겁다. 외동아들인 나는 늘 혼자 자라 외로웠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감정 표현이 서툴렀다. 이런 내게 인생의 밝고 아름다운 면을 보게 해주는 '아이들'이 있어 하루하루 행복하다.

롯데건설 1호 아빠 육아휴직자인 김승옥(40)씨는 “아빠 육아휴직은 자녀와 관계를 형성하는 소중한 기억”이라고 했다. 사진은 작년 성탄절을 맞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몰 아쿠아리움을 찾은 김씨의 다섯 식구. 왼쪽부터 김승옥씨 아내(40), 쌍둥이 딸 지아(3), 지우(3), 김승옥씨, 아들 은찬(9).

이런 행복은 남다른데, 내가 롯데건설 1호 아빠 육아휴직자이기 때문이다. 회사는 2017년 1월 아빠의 1년 육아휴직을 의무화했다. 첫 달은 월급을 전액 지급하는 등 조건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말이 의무화지, 한국 남성 직장인 가운데 이런 의무를 덜컥 이행하는 사람은 드물다. 다들 주저했다.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도 내가 같은 해 2월 이 의무를 받아들인 것은 쌍둥이가 태어나자마자 아팠기 때문이다.

아픈 쌍둥이 때문에 아빠 육아휴직 1호 타이틀

처음 태어난 아들 키우기는 다섯 살이 돼서야 나 혼자 목욕을 시킬 만큼 서툴렀다. 잦은 출장에, 마음과 달리 육아에 적극적이지 못한 탓이었다. 홀로 육아를 책임졌던 아내를 위해 가사를 돕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2017년 2월 태어난 쌍둥이 공주들은 육아를 돕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빠인 내가 주도적으로 키우지 않을 수 없었다. 2월 말 출산 예정이었던 아이들을, 태어나도 문제없을 체중이라는 이유로 같은 달 1일 제왕절개로 세상에 나오게 했다. 하지만 아기들은 호흡이 힘들었다. 결국 아기들만 급하게 구급차에 태워 상급 병원 신생아 집중 치료실로 옮겨야만 했다. 마취가 덜 풀린 아내와 아들만 병실에 남겨두고선 나 홀로 두 아이를 구급차에 태우고 달렸던 그 순간은 내 인생에 가장 긴박하고 힘든 순간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하루에 한 번 인큐베이터 안 쌍둥이 공주들을 10분 남짓 보는 게 다였다. 그마저도 아빠인 나만 가능했고 아내는 영상 통화를 통해 아이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 남짓 치료를 받고 뒤늦게야 우리 품으로 온 아이들은 내가 손수 키웠다.

육아휴직 들어갔지만 승진 불이익 없어

육아 초반 아빠와 스킨십이 많았던 딸들은 세 돌을 맞이한 지금도 "아빠, 아빠" 하며 껌 딱지처럼 붙어 다닌다. 즐겨 부르는 동요 '곰 세 마리' 가사도 '아빠 곰은 뚱!뚱!해!'가 아닌 '아빠 곰은 멋!있!어!'다. 잦은 야근으로 매일 놀아주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수요일과 금요일은 오후 6시 정각에 퇴근해 아이들과 놀아준다. 아무리 늦게 들어가도 설거지와 쓰레기 분리 배출, 주말 집 청소, 아이들의 전담 마크는 내 몫이다.

인생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아이들의 유년 시절이 그 어느 순간보다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도록 하는 아빠 역할을 남달리 고민하게 된 것도 육아휴직의 경험 덕분이다.

인사상 불이익은 없었다. 육아휴직에 들어갔지만 그해 3월 무난히 직급이 M2에서 M1으로 승진했다. 내 육아휴직 이후 회사에선 지금까지 많은 아빠의 육아휴직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오스카 최우수아빠상 수상자 같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개사한 노래처럼 진심 어린 멋진 아빠 곰이나 엄마 곰이 될 수 있도록 순간순간 우리 가족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