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는 할리우드가 있듯이 한국에는 충무로가 있습니다. 제 심장인 충무로의 모든 필름메이커와 스토리텔러와 이 영광을 나누고 싶습니다."

한진원 작가 심장 가까이 황금빛 오스카상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9일(현지 시각) 미 LA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과 '각본상'을 공동 수상한 '충무로의 이야기꾼' 한진원 작가가 보는 이들의 심장을 덜컹거리게 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4관왕을 가능케 한 '봉준호의 사람들'은 '봉테일' 못지않게 치밀하고, 도전을 거듭하는 이들이었다. "감독상 수상 당시 (끝인 줄 알고) 기쁨의 소리를 내지르느라 목이 다 쉬었다"는 한진원 작가는 봉 감독의 눈에 띄어 각본가가 됐다. 용인대 영화영상학과(05학번)를 졸업한 뒤 2012년 '남쪽으로 튀어(감독 임순례)' 소품 등 연출팀으로 먼저 영화계에 입성했다. 2017년 '옥자' 연출팀으로 인연을 맺은 뒤 '기생충' 초고를 쓰면서 운전기사와 가사 도우미 등을 만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모았다. "38선 아래로는 골목까지 훤합니다" "실전은 기세야" 같은 현장감 넘치는 쫄깃한 대사를 직접 만들어내며 객석을 들썩이게 했던 그다. 수차례 원고가 바뀌었지만 영화 속 중요한 키워드인 '냄새'는 한 작가의 초고 때부터 살아남은 부분. 한 작가는 시상 뒤 기자간담회에서 "자료 조사를 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과 감독님하고 회의하면서 나눈 얘기들이 스파크를 일으키고, 그런 것들이 나오면서 톡톡 튀는 대사들이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도착한 '기생충' 출연진이 레드 카펫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다.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은 뒤 출연 배우인 박소담(왼쪽)과 이정은(오른쪽)이 셀카를 찍고 있다.

봉 감독과 함께 공동 프로듀서로 작품상을 받은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마치 영화를 위해 태어난 이 같다. 영화 잡지 '키노' 기자 출신인 그의 친오빠는 영화 '친구' 등의 곽경택 감독이며, 남편은 영화 '은교' 등의 정지우 감독이다. 이메일 등에 사용하는 이름은 'Cine'. 2015년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직에 오른 뒤 제작한 첫 영화가 흥행 실패를 겪었지만, 두 번째 만난 '기생충'으로 일을 냈다. 시상식에서 "지금 이 순간에 뭔가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인,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인 기분이 든다"는 소감을 밝힌 곽 대표의 말처럼 아시아 여성 프로듀서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이다.

미술상 수상엔 실패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은 이하준 미술 감독은 스크린에서 '냄새'가 새어나오는 듯한 반지하와 대저택을 모두 만들어내며 세트 디자인과 무대 미술의 지평을 열었다. 재개발 지역 벽돌을 구하거나 저택의 나무 하나하나까지 직접 심는 등 그가 창조해낸 공간은 그 자체로 말하는 듯했다. '1인치의 장벽'은 미술 앞에선 이미 무너져 있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를 나온 이하준 감독은 영화 '하녀' '해무' '관상' '도둑들' 등을 거쳐 '옥자'로 봉 감독과 만났다.

아카데미 시상식 후 영화 '기생충' 트위터에 'Thank you'라는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

역시 편집상 후보에 올랐던 양진모 편집감독 역시 봉 감독의 든든한 지원자다. 21명의 배우를 1명의 우진으로 바꿔놓은 입봉작 '뷰티 인사이드'로 청룡영화상 편집상을 받은 양 편집감독은 봉준호의 '설국열차'에선 현장 편집과 VFX 편집, '옥자'에선 편집 감독을 맡으면서 봉 감독과 인연을 이었다.

배우들 역시 역사를 새로 쓴 주역이다. 조여정은 "오늘이 생일인데 배우로서 최고의 생일이었던 것 같다. 갈수록 몰래카메라 같았다. 울컥하더라"고 말했고 박소담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뉴스를 보면서 오늘 잠을 못 이룰 것 같다"고 소감을 말했다. 최우식은 "제 대사 중에 '계획에 없던 건데'라는 게 있는데 계획하지 못했던 큰 이벤트가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배우들과 스태프가 봉 감독에게 영광을 돌리며 자주 쓰는 단어였던 '봉비어천가'는 어느새 한국 관객을 향한 감사로 바뀌었다. 곽신애 대표는 "자국 영화를 그 어느 나라보다도 사랑하는 한국 관객들 덕분에 한국 영화 산업이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냈다"고 말했고, 이하준 감독은 "한국 영화가 정말 이 정도까지 왔구나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감격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