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소설가

이다혜의 책 ‘출근길의 주문’에는 ‘가면 현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용어는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전 임스가 만들었는데, 성공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세 가지 유형으로 정리한다. 첫째, 사람들은 내 성공을 과대평가하고 있다. 둘째, 내 성공은 운 때문이다. 셋째, 내가 이룬 성공은 대단하지 않다.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방송하는 나, 신문에 글을 쓰는 나, 강연하는 나 자신이 낯설 때가 있다. 종종 이 자리에 내가 맞는 사람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재능에 대한 의심이 많고 불안하기 때문에 매일 읽고 쓴다. 청탁 전화가 오면 대개 이틀을 넘기지 않고 원고를 쓴다. 내 경우, 마감 직전의 불안감이 아드레날린을 뿜으며 좋은 원고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망작으로 엎어지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몸살기가 있더니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마감이 코앞인데 한 글자도 못 쓰고 있다가 우연히 이전에 써놓은 원고들을 '발견'했다. 컨디션이 좋던 날, 미리 써두었던 것이다.

"내가 얻은 좋은 기회는 미래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과거의 퍼포먼스의 결과다. 과거의 내가 열심히 해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내가 두려워하지 않아야 미래의 내가 더 좋은 기회를 얻으리라."

아! 써놓은 원고를 보니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칭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인간은 한심해서 부정의 기술은 쉽게 습득하고, 긍정과 낙관의 기술 연마는 이토록 어렵다. 게다가 낙관주의는 비관주의에 비해 종종 지적이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러니 내가 나를 믿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안팎으로 이래저래 힘 빠지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힘을 내 과거의 원고를 읽던 날, '출근길의 주문'에 나오는 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현재의 내가 누군가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나다. 미래의 나여, 현재의 나에게 고마워하길."

잘 사는 법이 있다면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고마워할 일을 만드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