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수 Books팀장

“(미)합중국의 공직자들만큼 처신에 꾸밈이 없고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대하며 시민의 요구를 경청하고 성실하게 답변하는 관리를 달리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19세기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1805~1859)이 쓴 '미국의 민주주의'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훗날 프랑스 외교장관이 되는 토크빌은 스물여섯 살 때인 1831년 미국을 9개월간 답사하고 쓴 이 책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합니다. 국내에는 한길사와 아카넷('아메리카의 민주주의') 번역본이 있습니다.

토크빌이 지금 미국 정치를 본다면 실망하지 않을까요. 트럼프 대통령과 펠로시 하원의장 얘기입니다. 지난 4일(현지 시각) 트럼프는 의회에서 펠로시가 악수를 청하자 이를 무시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펠로시는 텔레비전 생중계가 되는 현장에서 트럼프 연설문을 북북 찢었습니다. 토크빌이 말한 누구에게나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공직자 모습은 아니네요. 하긴 토크빌은 이런 얘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이 입법부 권력과 줄곧 대립을 유지한다면, 그것은 그의 권력이 강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6일 자 1면 칼럼 '천성인어(天声人語)'에서 트럼프와 펠로시의 행동을 언급하면서 '비례(非禮)를 비례로 갚나'라고 썼습니다. 자국 정치인의 예의 없는 행태도 언급하면서 "정치가의 품위를 생각할 때 절망적인 이야기가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들려온다. 단지 우연은 아닌 것 같다"고 적었습니다.

정치인에겐 무례가 만국 공통의 덕목인 모양입니다. 우리는 말할 것도 없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