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김홍정 지음|솔출판사|전 10권|각 권 1만 4000원 충남 공주의 토박이 작가 김홍정(62)이 대하 역사소설 ‘금강(錦江)’을 전 10권으로 완간했다. 작가는 지난 2016년 제 1부 3권을 선보인 뒤 후속편을 잇달아 냈다가 새해를 맞아 제4부와 5부를 출간함으로써 취재와 집필을 합쳐 15년에 걸친 대장정을 끝냈다. 이 소설은 금강을 굽어보는 공산성을 중심으로 16~17세기 조선시대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했다. ‘강물이 불었다’고 시작하는 소설 첫머리는 유장하게 흐르는 금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전막(田莫) 들판을 채운 물들이 쌍신들과 도토뱅이를 거쳐 귀산 들판으로 밀려들더니, 관골을 지난 수촌(水村)들을 채우고 정안천(井安川)에서 몰린 물들과 합세하여 모란 들판까지 누렇게 출렁거렸다. 촛대봉과 무성산, 정지봉 봉우리만 남기고 강줄기를 따라 펑퍼짐한 들판은 모두 물에 잠겼다….’

공주에서 태어나 공주 사범대를 나온 김홍정은 고향에서 국어 교사를 지냈다. 지역 작가로 활동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소설 '금강'으로 비로소 '필력이 좋은 대형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궁중 소설과 민중 소설로 양분된 한국 역사소설의 문법을 혼합하고 여성이 주도하는 상상의 역사를 가미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숱하게 터진 사화(士禍)를 중심으로 정쟁에 몰두했던 궁중 암투를 재현한 정치 소설이기도 하고, 임진왜란을 다룬 전쟁 소설이기도 하며, 상업의 발달을 담은 사회경제사 소설이기도 하다. 다양한 성격을 지닌 소설답게 등장인물도 다채롭다. 임금을 비롯한 지배 계층 외에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이 골고루 안배된 가운데, 신분 차별이 없는 '대동 사회(大同社會)'를 꿈꾸면서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는 지식인과 민중이 손을 잡아 비밀 결사를 꾸려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뼈대를 이룬다.

대하역사소설 '금강'을 완간한 작가 김홍정이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공주산성에 올라 "금강 유역의 특산물인 염색 옷감과 젓갈이 조선시대엔 갓개포를 통해 한양까지 유통됐다"고 설명했다.

홍명희의 '임꺽정'이나 김주영의 '객주' 같은 기존 역사소설이 남성 중심으로 진행된 것과는 달리 '금강'에선 여성들의 활동이 중심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색다르다. 요즘 페미니즘 시대에 부응하는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공주에 기반을 둔 대규모 상단(商團) 경영자로 여성 '연향'을 등장시킨 것이 소설 도입부를 형성한다. 작가는 15세기 이후 5일장 체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고, 대형 상인 집단이 등장하면서 대외 무역도 활발해진 역사를 적극 활용하면서 여성 인물을 가미했다. 그 여성이 상업으로 성공한 뒤 개혁을 지향하는 선비의 뜻을 받들어 농민과 승려까지 포함한 비밀 결사 '동계(同契)'를 관리하고 후원한다는 것. 그녀는 돈의 흐름을 좇아 다니다가 한양의 상거래를 장악한 정치 권력의 실세를 만나 여러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힘을 키운다. 이 소설은 물론 기묘사화, 을사사화, 이몽학의 난 등 실제 사건들을 현미경처럼 조명하다가, 연향을 포함해 작가의 상상력이 낳은 다섯 여인이 잇따라 등장해 정국(政局)을 크게 내다보면서 저마다 '대체(代替) 역사'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묘미는 금강 지역 향토사에 철저하게 바탕을 둔 작가의 생생한 입심이다. ‘무신년(戊申年·1608년) 칠월 보름. 공주목을 관통하는 제민천(濟民川)이 바닥을 드러낸 지 열흘이 지났다. (중략) 강폭은 이미 줄어들 대로 줄어들었지만 가뭄이 심해지기 전 미리 강바닥을 파서 강물을 가둔 까닭에 겨우 식수는 해결했다’(제 7권)는 대목은 ‘홍길동전’의 저자로 여겨지는 허균이 공주 목사를 지낼 때 가뭄에 대비했다는 향토사의 기억을 되살린 것. 이어서 작가는 당시 기록에 상상력을 보태곤 ‘눈썰미 있는 사람들은 드러난 강바닥에 열무를 심었다. 강바닥에 달라붙은 황토가 적당히 양분을 지녀 다른 퇴비를 쓰지 않아도 심기가 무섭게 싹이 트고 자랐다’며 고향의 흙맛도 묘사했다. 작가는 완간하고 나서 “금강 유역은 조선 성리학의 바탕이었고, 대동법이 시행된 곳이며, 동학이 그 뜻을 펼친 곳이며, 천주학을 모신 이들이 죽음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곳”이라고 애향심을 당당하게 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