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계의 전설인 할리우드 원로배우 커크 더글라스가 향년 10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날 외신들은 한때 레슬링 선수 출신에서 할리우드에 진출, 대배우이자 제작자로 오랜 기간 전성기를 누린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일제히 보도했다.

5일(현지 시각) AP통신, CNN, 뉴욕타임스(NYT) 등은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이끈 대배우"라며 커크 더글라스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커크 더글라스와 그의 아들 마이클 더글라스의 사진.

이날 커크 더글라스의 아들이자 할리우드 배우인 마이클 더글라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처음 알렸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기리며 "그는 세상의 전설이자 그의 전성기가 영화 황금기와 같았다"고 말했다.

지난 1916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커크 더글라스는 러시아계 유대인 출신이다. 그는 배우의 길로 들어서기 전 생계를 위해 40개 이상의 직업을 전전했다. 한때 레슬링 선수를 하기도 했다.

더글라스는 학비 대출을 이용해 세인트 로렌스 대학교 체대에 들어가 대학 내 레슬링 챔피언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대학 졸업 후 1934년 배우의 길을 걷기 위해 ‘아메리칸 드라마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Dramatic Art, AADA)’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배우로서의 커리어는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시작했지만 뒤이어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해군으로 입대했다. 제대 후인 1946년, 학교 동기의 추천으로 영화 ‘마사 아이버스의 위험한 사랑’로 데뷔했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더글라스는 할리우드에 진출하게 된다.

커크 더글라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스파르타쿠스의 한 장면.

그는 특유의 사각턱과 구릿빛 피부, 그리고 레슬링 선수로 일했던 경력을 살려 거칠고 강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꾸준히 경력을 쌓은 덕분에 그는 1950년에 영화 ‘챔피언(Champion)’, 1953년에 ‘미녀와 건달(The Bad And The Beautiful)’, 1957년에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3번 오른다.

더글라스가 할리우드에서 명배우로 정착한 후에는 독립 프로덕션을 세워 1960년 로마 시대 ‘스파르타쿠스의 난’을 다룬 ‘스파르타쿠스(Spartacus)’를 만들게 된다. 이 영화로 오스카상을 4개 수상하는 등 작품성과 흥행 측면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다.

더글라스는 2008년까지 90개에 가까운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등 할리우드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직접 배우로서 오스카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1996년 미국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협회(AMPAS)는 그에게 명예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그는 대통령 자유 훈장과 미국 영화 연구소(AFI)의 평생 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1943년 아메리칸 드라마 아카데미 동기였던 다이애나 더글라스와 결혼해 마이클 더글라스와 조엘 더글라스를 낳았다. 두 아들 모두 할리우드에서 각각 배우와 프로듀서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첫째 아들인 마이클 더글라스는 영화 시카고에서 ‘벨마’ 역할을 소화한 캐서린 제타존스와 결혼해 화제를 낳기도 했다.

커크 더글라스의 100살 생일 때 찍은 사진. 커크 더글라스가 두번째 아내인 앤 바이든스와 손을 잡고 있다. 뒷줄에는 마이클 더글라스(왼쪽에서 두번째)와 캐서린 제타존스(왼쪽에서 세번째)가 자녀들과 함께 서있다.

첫번째 부인인 다이애나와 이혼한 후 그는 1954년 앤 바이든스와 재혼해 두 아들, 피터와 에릭 더글라스를 낳았다. 그는 60년간 죽기 전까지 앤과의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2017년 앤과 함께 진행한 USA투데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금까지 만난 여자 중 가장 어려운 여자"라고 농담조로 전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아내의 베개 밑에 늘 짧은 편지를 적어 둬 앤를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글라스는 말년에 작가로 전업해 자신의 영화 인생에 대한 책들을 쓰기도 했다.

백수를 누린 원로 배우로 알려졌지만 그의 인생이 늘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1991년 그는 비행기와 헬기가 충돌하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2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였지만, 더글라스는 부상을 입는 데 그쳤다.

1996년 그는 뇌졸중을 앓아 언어 장애를 가지게 됐다. 2004년에는 막내 아들이자 배우인 에릭 더글라스가 약물 남용으로 아파트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