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지침'에 따라 지난달 28일부터 '14일 이내 중국에 다녀와 폐렴 증세가 있거나, 후베이성을 다녀와 발열(37.5도 이상)이나 호흡기 이상이 있으면' 우한 폐렴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확진자와 밀접 접촉한 지 14일 이내에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어도 검사가 가능하다. 그런데 보건 당국은 이 지침의 문구를 기계적으로만 해석하면서 우한 폐렴 환자들의 조기 확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열이 있거나 기침하는 환자들도 "혹시나 감염자일까 걱정되는데 매뉴얼상 검사를 못 받는다니 답답하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중국 방문' '호흡기 이상' 두 조건 다 충족해야 검사 가능

현재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은 중국 본토만 우한 폐렴 감염 위험이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5일부터 19일까지 태국 여행을 다녀온 16번 확진자는 25일 의심 증세가 생긴 이후 수차례 병원을 방문했다. 그러나 '중국에 다녀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중국 밖에도 이미 우한 바이러스는 전파되고 있는데도, 이런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그는 결국 지난달 25일 방문한 광주 21세기병원에서 '변종 바이러스 폐렴'이 의심되니 우한 폐렴 검사를 받으라는 진료의뢰서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질병관리본부와 광산구보건소는 "중국에 다녀온 적이 없어 검사받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결국 증세가 악화된 4일에서야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전문가들은 "보건 당국으로부터 검사 퇴짜를 받았던 시점에 이미 우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였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확진되기까지 최소 306명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에 다녀온 17번 확진자 역시 중국을 다녀오지 않아 '우한 폐렴' 증세에도 검사를 받지 못한 경우다. 그는 지난달 24일 귀국해 26일 몸에서 열이 나 한양대 구리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러나 의료진은 싱가포르에 다녀왔기 때문에 '단순 발열'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12번 확진자도 지난달 30일 보건소를 찾았지만 '중국에 다녀오지 않았다'고 말해 검사 대상에서 제외됐었다. 일본만 다녀왔고 열과 기침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0일 우한에서 귀국한 4번 확진자는 21일 감기 증세로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이번엔 중국에는 다녀왔지만 증세가 약하다고 제대로 된 검사를 못 받았다. 또 국내 '1번 확진자'인 중국인 여성은 당시 지침에 따라 '우한에 다녀와 발열과 호흡기 이상이 모두 있어야' 격리 및 조사 대상이란 조건에 맞지 않았다. 우한에서 입국했지만 호흡기 증상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현장 검역관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조사 대상으로 분류한 덕분에 검역 단계에서 걸러졌다. 지침을 따르면 환자를 그냥 돌려보내야 했고, 지침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방역에 성공하는 일까지 벌어진 셈이다.

◇의심 증상 생겨도 검사받기 어려운 현실

지난 1일 발열 증상이 있어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에 전화를 걸었다는 20대 군인은 "우한 폐렴 검사를 받고 싶다"고 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5번 확진자와 같은 날(지난달 25일) 같은 장소(CGV 성신여대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 등을 통해 알았다. 그런데 보건 당국은 '영화 본 시간대가 다르니 검사를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한 것이다. 한 전문가는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서 최대 5일까지 생존한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마당에 시간대 차이를 이유로 검사를 못 받게 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서울 명동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중국인 등 외국인과 접촉이 많다는 이모(39)씨는 지난 5일 발열이 있어 '우한 폐렴' 검사를 받기 위해 동대문보건소를 찾았다. 이씨는 "보건소에 갔더니 '중국을 갔다 온 게 아니라면 우한 폐렴은 아닐 것 같으니 가까운 병원에 가라'며 체온 검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인터넷에도 태국 등을 다녀와 의심 증세가 있어 1339에 전화를 걸었지만 검사를 받지 못했다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질본은 "하루 160명 정도만 우한 폐렴 감염 여부를 검사할 수 있어 감염 가능성이 높은 사람부터 검사해야 해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 지침에 따라 우한 폐렴 검사 대상이 아니었던 사람들이 뒤늦게 우한 폐렴 확진자로 밝혀지면서 '나도 검사해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