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우한 폐렴 확진자들의 신상·동선 등이 정부 공식 발표 이전에 유출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질본)의 조사 결과 발표가 늦어지는 와중에 새나간 지자체발(發) 정보와 가짜 뉴스, 추측 등이 뒤섞이면서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커지고 있다.

질본은 5일 오전 9시 20분 "우한 폐렴 17·18번째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추가 내용은 오후 2시 브리핑 때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가 내용'은 의외의 장소에서 공개됐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17번 싱가포르 방문자' '18번 확진자 발생→16번 환자의 딸'이라고 적힌 메모를 읽는 모습이 한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됐기 때문이다. 질본은 보도 후 10분이 지난 오전 9시 30분쯤 뒤늦게 장관 메모 내용대로 17·18번 확진자 정보를 발표했다.

◇환자 동선 정보 사전 유출 세 번째

이런 모습은 지난달 20일 국내 첫 우한 폐렴 확진자가 나온 이후 반복되고 있다. 4일 오후 2시 공식 브리핑 전 질본은 "16번 확진자는 태국 여행 후 지난달 19일 입국했고 2월 3일 전남대학교 병원에 (우한 폐렴 여부) 검사를 의뢰해 양성이 나왔다"며 그 밖의 동선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이 환자가 전남대병원에 가기 전인 지난달 27일부터 광주 21세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는 내용 등이 적힌 문건이 맘카페 등 인터넷에서 돌고 있었다. 광주 주민들의 소셜미디어에서는 "확진자는 광주 수완아울렛 근무자다" 등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돌았다. 그러나 질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건 내용을 언론에 확인해 주지 않고 "진위 여부 등을 조사 중"이라고만 해서 혼선을 더 키웠다.

장관 메모가 찍히고 나서야… 10분뒤 17·18번 확진자 정보 발표 - 5일 국회에서 열린 우한 폐렴 대응 고위 당정청 협의회에서 박능후(왼쪽 사진 가운데) 보건복지부 장관이 보고 받는 모습을 강기정(왼쪽 사진 오른쪽) 청와대 정무수석이 지켜보고 있다. 이날 박 장관이 17·18번 확진자와 관련된 메모를 보는 장면이 언론에 포착됐다. 이 내용이 공개되자 중앙사고수습본부는 10분쯤 뒤 우한 폐렴 추가 확진자를 발표했다.

앞서 지난달 30일엔 서울 성북구 보건소에서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5번 확진자 관련 문건이 31일 질본 발표 전에 유출됐다. 그래서 영화관과 영화 이름까지 다 알려졌지만, 질본은 '증상 발현 전 일정'이라며 그가 영화관의 1~3관 중 몇 관에서 몇 명과 영화를 봤는지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확진자 다녀간 마트 이름 잘못 공개

질본이 부정확한 정보를 공개해 엉뚱한 가게가 피해를 보기도 했다. 질본은 지난 1~3일 브리핑 때마다 5번 확진자가 지난달 27일 서울 성북구의 '럭키마트'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뒤늦게 업체명이 잘못됐던 사실이 알려지자 질본은 4일 "'럭키후레쉬마트'를 방문했다"고 정정했다. '럭키마트' 측은 "5번째 확진자가 방문한 럭키마트는 다른 곳에 있는 럭키마트"라고 써 붙이고 영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질본이 '역학조사가 끝날 때까지 비공개' 또는 '확진자가 증세가 나타나기 이전 동선은 비공개'라는 방침을 고수하며 동선 발표에 소극적인 것과 무관치 않다. 전문가들은 정부 불신을 막으려면 무엇보다 신속한 정보 공개가 중요하다고 본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현재처럼 감염자가 늘어나는 시점에는 정확성보다 신속성이 중요하다"며 "질본이 이른 공개로 실수가 발생하면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공무원적 발상을 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