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사태'에 발길 끊긴 인천 차이나타운
3곳 중 1곳은 휴업… 문 연 식당도 매출 바닥
"종일 손님 2명뿐…직원들 월급은 어떡하나"
"사스·메르스 때보다 심각… 진지하게 폐업 고려"
화교 2·3세대가 대부분…"우린 한국이 고향"

지난 4일 낮 12시쯤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 거리. 점심시간인데도 장사를 접은 채 문을 닫은 중식당이 많았다. 불이 꺼진 식당 입구마다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하여 당분간 쉽니다’ ‘당분간 영업 안 합니다' 라는 문구가 나붙었다. 거리도 한산했다.

그나마 문을 연 식당들도 사정은 좋지 않았다. 200여 명의 손님이 주말마다 꽉 찼다던 60년 전통의 한 중식당은 빈 테이블이 많아 썰렁했다. 4대째 식당을 운영 중인 업주 한모(41)씨는 "평일에도 점심시간만 되면 식사를 하기 위한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우한 폐렴 사태가 지속되면서 지난 설 연휴 이후 발길이 뚝 끊겼다. 매출도 전월 대비 80%가량 줄어든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지난 4일 낮 12시 인천 중구 차이나타운 입구를 상징하는 패루(牌樓)의 모습. 그 뒤로 텅 빈 차이나타운 거리가 보인다.

◇ "우한 폐렴에 차이나타운이 기피장소… 사실상 상권 전멸"
중국발(發) 우한 폐렴에 대한 공포심이 퍼지면서 인천 대표 관광지인 차이나타운에 불똥이 튀었다. 대형 중식당과 월병, 양꼬치집 130여 곳이 영업 중인 차이나타운은 평소 점심·저녁 시간이면 한국인 손님과 중국·동남아 외국인 단체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이날은 지나다니는 사람을 손에 꼽을 정도로 한산했다. 이곳 상인들은 "지난 1884년 차이나타운이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최악의 불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중식당 ‘공화춘(共和春)'도 손님이 크게 줄었다. 평소보다 손님이 10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사장 이현대(64)씨는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이렇게까지 타격을 입지 않았는데 유독 이번 사태는 심각한 것 같다"며 "2004년부터 식당을 운영해왔는데 진지하게 폐업을 고려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인근 중식당 지배인 A씨는 아예 식당 앞에 나가 손님 모시기에 나섰다. 하지만 텅 빈 거리에서 손님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한 폐렴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차이나타운이 일종의 기피 장소가 된 모양입니다. 사실상 이곳 상권은 전멸입니다. 전멸…." A씨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매출은 2주 전과 비교해 90%나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오후 3시가 됐는데, 종일 손님 2명이 와서 짜장면 2그릇 드신 게 전부"라고 했다.

매출이 크게 줄자 일부 식당들은 아예 임시 휴업에 들어갔다. 거리엔 ‘영업 종료' 안내문이 붙은 채 불이 꺼진 식당들이 많았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인천광역시지회에 따르면 차이나타운 전체 식당 130여 곳 중 약 30%가 임시 휴업한 상태다. 한 중식당 주인 전모(63)씨는 "과거 잇따른 경제 위기에도 최소한 현상 유지 정도는 됐는데, 지금은 종업원 30명 월급주기도 힘들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4일 우한 폐렴 사태 이후 문을 닫은 중식당. 식당 주인이 가게 문 앞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당분간 쉽니다'라는 문구를 붙여놨다. 한국외식업중앙회 인천광역시지회에 따르면 차이나타운 내 식당 130여 곳 중 약 30%가 현재 임시 휴업 상태다.

◇차이나타운엔 화교 2·3세대가 대부분…"우리의 고향은 한국"
이곳 상인들은 "우한 폐렴이 중국에서 발병했다는 이유로 차이나타운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했다. 이른바 '시노포비아(Sino-phobia·중국 공포증)'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차이나타운 식당 대부분은 화교 2·3세대가 운영하고 있다. 사실상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집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이곳 상인들 입장이다. 차이나타운에서 20여 년 동안 중식당을 운영해온 인천화교협회 회장 손덕준(65)씨는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인천 토박이"라면서 "우린 한국에 완전히 정착한 화교 2·3세대들인데 막연하게 ‘차이나타운’이라면서 피하는 건 오해"라고 했다.

이어 "나를 포함한 화교들의 고향은 한국이며, 중국 본토는 오히려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한다"며 "중국 현지에서 온 요리사가 몇 명 있지만, 이번 춘제(春節) 때도 우한 폐렴 탓에 모두 한국에 남아 있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4일 오후 차이나타운 내 중식당 공화춘. 점심시간인데도 텅 비었다. 이곳 사장 이현대씨는 “손님이 급격히 줄어 차라리 장사를 접을까 고민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이 지역이 청나라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겨났다. 2001년 문화관광부가 관광특구로 지정하면서 매년 30만명이 찾는 인천의 관광명소가 됐다. 지난해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의 100대 관광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일부 상인들은 우한 폐렴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을 대비해, 인천시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화춘 사장 이씨는 "이곳 상인들 모두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는데 마땅한 대책 하나 없고, 방역 매뉴얼조차도 전달받지 못했다"며 "미리 지자체에서 대책을 마련해 손을 썼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이나타운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배모(61)씨는 "한류의 인기로 관광객들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던 상황"이라며 "그동안 잘 조성해놨는데, 인천 차이나타운이 명맥이 끊길까 봐 불안하다"고 했다.

인천 중구청 관계자는 "현재 차이나타운의 사정을 알고 있다"며 "방역을 비롯해 홍보나 캠페인 등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