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종로・용산・서대문 지역 동네의원 둘러보니

서울 용산구 지역의 동네의원들이 입주한 빌딩.

"중국에 마스크 300만장을 보내는 것도 중요한데 우리나라 동네병원도 신경써야죠. 다음주에도 마스크 구입 못하면 ‘휴진’할 수 밖에 없어요. 결국 피해는 환자에게 돌아가요."

2~3일 기자가 둘러본 서울 구로구, 종로구, 용산구, 서대문구 지역 동네병원 의사들은 한숨부터 내쉬면서 ‘마스크 대란’을 얘기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비상 사태’이지만, 보건용 마스크는 구할 수도 없어 지금 같은 상태가 지속될 경우 진료를 하지 못하게 될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네의원으로 불리우는 의원급 의료기관인 1차 병원의 경우 각종 감염병 등 초진 환자를 우선적으로 진료한다. 우리 보건당국은 최근 2주내 중국을 방문한 뒤 우한 폐렴 증상이 나타난 경우 선별 진료소로 가도록 권고하지만 비슷한 증상인 발열·기침 등을 호소하는 환자들은 대부분 1차 병원을 찾는다. 의료진, 환자 모두 우한 폐렴 감염 예방을 위해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확진자와의 접촉을 인지하지 못한 2차 감염 환자인 ‘8번째(62·여) 확진 환자’가 들렀던 군산 지역 내과 병원의 경우 임시 폐쇄 조치됐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한 의원에 들어서니 진료를 위해 방문한 환자들로 붐비는 가운데 마스크를 끼지 않은 환자가 간혹 눈에 띄었다. 이 의원에서는 무료 마스크가 제공되지 않았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 병원에서는 내원한 환자와 보호자에게 병원에 비치된 일반용 마스크를 무료로 제공했다. 한 박스에 50개가 들어있는 덴탈용마스크는 10분도 되지 않아 동이 났다.

서울시 구로구의 한 동네의원 내과 전문의 박명진(가명)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막기 위해 하루에도 수십여명의 환자를 진료해야 하는 의사, 간호사는 보건용 마스크를 필수로 착용하고 환자를 진료해야 하지만 온라인이나 도매상은 물론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도 일정량의 마스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박씨는 "온라인 구매를 시도했지만 구매 취소가 계속된다"며 "마스크 폭리가 더해지면서 가격 부담도 크다. 하루에도 수차례 마스크를 바꿔 껴야 하는 의사에게 질병관리본부나 복지부, 서울시 및 구청 등 지자체 조차 답이 없다고만 말한다"고 전했다.

박씨는 "정부가 중국에 마스크를 300만개나 보냈다고 하던데, 정작 우리 국민을 위해서는 뭘 하는지 모르겠다. 버스 등에선 마스크를 무료로도 나눠주는 것으로 알지만 감염병에 가장 취약한 곳은 병원이다. 정부는 말로만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하고, 정작 공급 부족에는 대책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시 구로구 한 병원 엘리베이터에 앞에 ‘최근 2주 내 중국 후베이성 방문 뒤 발열 및 호흡기 증상이 있으면 1339로 전화해서 진료 안내받으세요’라는 한국어와 중국어로 된 안내문이 붙어 있다.

구로구의 또 다른 동네의원 의사 김지석(가명)씨 역시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 당시에도 마스크 부족 등이 문제가 됐지만 고쳐진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세계보건기구(WHO)가 우한 폐렴 확산을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로 선포했고 정부도 ‘심각 단계’에 준해 대응해 나간다고 하지만 동네병원에는 마스크 지원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군인에게 총을 줘야 싸울 수 있는 것 아니냐"면서 "정부가 ‘전염병과 전쟁’을 선포했지만 정작 의료물자에 대해서는 무대책이다. 다음주까지 무대책이면 휴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한 동네의원 내과 전문의인 이준석(가명)씨는 "대만만 해도 우선 국가에서 의료진과 방역에 참여하는 현장 사람에게 우선 공급하고, 국민에게 유료 지급하는 식의 마스크 공급 대책을 세웠다"며 "메르스 사태 당시 정부가 일반 마스크 조차 사태가 끝날 무렵에야 지급한 일을 잊은 것 같다"고 했다. 이 씨는 "현재 보건용 마스크를 쓰고 진료를 해야하지만, 온라인 주문이 안돼 메르스때 사둔 것으로 버티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는 동네의원에 감염 우려 있는 환자를 그냥 보내면 ‘처벌하겠다’는 식으로 엄포를 주고 있지만, 정작 마스크 등 공급에는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며 "강동구 등 지역사회에도 전파될 경우 휴진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강북삼성병원 의료진이 병원 입구에서 환자 및 방문자를 상대로 문진을 하기 위해 서 있다.

종합병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마스크가 넉넉한 편이다. 강북삼성병원, 서울적십자병원 등 일부 병원에서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무료로 일반 마스크를 나눠주고 있었다.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재고는 이미 확보된 것으로 안다"면서도 "의료진이 쓰는 물량까지는 문제가 없겠지만, 방문자에게도 무료로 제공하게 될 경우 물량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의료진에게도 감당 못할 상황이 발생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의 경우엔 하루 평균 6만여명의 환자·보호자가 병원을 방문한다.

대한의사협회는 3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일선 의료현장에서 진료 중단 등의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마스크 등 기본 방역용품을 원활히 공급해야 한다"고 방역당국에 촉구했다.

정부는 중국 보따리상들이 보건용 마스크까지 싹쓸이하는 것을 억제하는 등의 대책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선 의료현장에 대한 마스크 공급에는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을 내놓지 않아 동네의원들은 각개전투하듯이 마스크 확보에 나서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는 가운데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적십자병원에 진료를 위해 방문한 환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