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건국 이래로 가장 혹독한 사법파동을 겪었는데, 그 당시 그 무대 한 가운데 섰던 법관들 중 일부가 선거철이 오니 정치를 하러 가셨다."

21대 총선 출마 등 정치 진출을 위해 법복을 벗는 판사들이 속속 등장한 가운데, 현직 부장판사가 이들을 비판하는 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려 주목받고 있다.

김태규(53·사법연수원 28기·사진)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건국 이후 최악의 사법파동과 그 일부 주역들의 향후 거취에 관하여'라는 글을 올렸다. 이탄희 전 판사는 지난달 19일 더불어민주당에 '10호 영입 인재'로 입당했고, 이수진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같은달 27일 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피해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대여섯 차례의 사법파동이라고 할 만한 사건들이 있었다"며 "대부분은 정권이나 사법부 수뇌부의 압력에 대하여 저항하는 의미가 있었고, 그래서 법원 내부의 법관들도 대체로 동조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기는 했어도 그 방향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는 크지 않았던 듯하다"고 했다.

다만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서는 "2017년에 시작된 사법파동은 이전의 사법파동과 성격을 달리했다"고 했다. 주도세력이 법원 내 주류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법원 수뇌부의 지지를 받거나 입장을 같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공격의 대상은 법원을 떠났거나, 법원에 잔류하고 있더라도 크게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비주류들"이라며 "사법파동의 한가운데에서 어떤 권한을 행사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이들에 대해 과거행위를 문제 삼고 책임을 물으며 척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고 했다.

그는 "법원은 두 토막이 났고, 법원 내 이념 분화의 양상까지 비쳤으며, 일부 법관은 동료 법관들에 대해 '법관 탄핵'까지 거론했다"며 "법원 수뇌부는 사태를 수습하기보다는 주류를 옹호하거나 주류의 행위를 묵인했다. 일부에서는 이런 특이한 현상을 두고 '법원 자살'이라는 표현까지 썼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혹독한 혼란으로 법원 안에서 서로 말하지는 않으나 편갈림이 나타났고, 소송의 결과에까지 나타나는 외양이 만들어지자 소송 당사자들은 법관의 성향까지 살펴야 하는 극심한 부작용을 보였다"며 "대법원의 대법정에 시위대가 난입하고, 법관에 대한 공공연한 위협이 뒤따르며, 대법원장의 차량에 대한 물리력의 행사까지 나타난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최고, 최악의 사법파동"이라고 했다.

그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한 법원 내부 조사에 대해 "결과물의 목표치를 정해놓고 그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조사를 요구하는 모습이었다"며 "영장주의와 같은 중요한 법원칙의 위반까지 일어났는데, 조사단의 결과조차 불만을 터트리는 이른바 주류 판사들의 행동방식을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호재를 만난 일부 언론들은 재판거래를 당연한 표현으로 정리하면서 마치 법원이 무슨 큰 부정한 이득이라도 받고 재판을 거래한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며 "참 서운한 것이 그렇게 재판거래를 했다고 온갖 비난을 받은 그 많은 법관들 중에서 한 푼의 돈이나 조금의 경제적 이득이라도 취한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모든 의혹이 거짓이냐고 묻는다면 법원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진실이다 아니다 말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면서도 "대법원 안에서 재판거래를 하려면 개성 강한 대법관들 14명이 모두 한통속으로 의기투합해야 한다"며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재판거래를 위해서는 대법관들이) 얻고자 하는 이익이 서로 간에 모순 없이 구현돼야 하고, 대법관 개개인에게 소속된 서너명의 재판연구관의 눈을 피해야 한다"며 "더 많은 물리적 제약이 있지만 이 정도의 물리적 제약만 언급해도 그것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터넷을 검색하면 재판거래라고 하면서 법관들이 돈이라도 받고 재판한 것처럼 비치게 쓴 것 등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지경의 글들이 올라 있다"며 "그러기에 현재 진행 중인 사법파동과 관련한 재판에 대해 더 엄정하고 바른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그렇게 무서운 일을 벌어 졌고, 그 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라며 "법원이 건국 이래로 가장 혹독한 사법파동을 겪었는데, 그 당시 그 무대 한 가운데 섰던 법관들 중에서 일부가 선거철이 오니 정치를 하러 가셨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고, 피선거권에 제한이 없는데 정치를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겠나"라며 "바른 정치를 하시기를 부탁하는 것이 맞다. 다만 그 분들이 사법부의 독립과 정의를 외치며 일으켰던 커다란 소용돌이는 이제 오롯이 남겨진 사람들이 감당해 내야할 몫이 되었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그 분들 몸에 투영된 법관의 이미지가 채 가시기도 전에 서둘러 정치로 입문하셨다"며 "정치인의 길을 가셨으니 이제 법원에 대하여 간섭하시는 것이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에 독이 되실 수 있다는 것을 살펴주시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