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 대중목욕탕, 서울 시내 면세점, KTX, 수도권 지하철….

질병관리본부가 2월 2일 정례 브리핑에서 공개한 5번 확진자(지난달 30일 확진), 8번 확진자(지난달 31일 확진), 12번 확진자(2월 1일 확진)의 동선(動線)에 등장하는 장소다. 우한 폐렴 확진자들의 동선이 드러나면서 감염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보건 당국이 당초 사람 간 전파 가능성을 낮게 보면서 초동 대응에서 허점이 생겼고, 그 결과 확진자들이 전국을 활보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기 부천 살면서 KTX 타고 강릉 여행

12번 확진자는 경기 부천에 살면서 11일 동안 서울·인천·경기·강원을 '전국구'로 돌아다녔다. 그는 관광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48세 중국 남성이다. 일본에서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가이드한 뒤 지난 19일 일본 오사카를 출발해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질본은 그가 일본 확진자와 접촉해 감염됐다고 밝혔다.

그는 입국 다음 날인 20일 첫 증상이 나타났지만, 30일 자가 격리되기까지 일상생활을 했다. 그는 20일 정오쯤 서울 장충동 신라면세점을 찾아 마스크도 하지 않고 루이비통, 샤넬, 구찌 매장 등에서 90분 동안 쇼핑했다. 면세점 직원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질본은 그의 증상이 20일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같은 날 오후 7시 20분 CGV 부천역점에서 영화 '백두산'을 봤다. 22~23일엔 아내와 딸과 함께 강릉으로 가족 여행도 다녀왔다. 교통편은 인파가 몰리는 서울역과 강릉역에서 KTX를 이용했다. 강원 정동진의 썬크루즈리조트에서 묵었고, 강릉 식당에서 점심·저녁을 먹었다. 그의 아내는 2월 2일 14번째 확진자로 판정받았다. 남편에게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초등학생 딸은 2일 기준 증상이 없다.

가족 여행 뒤에 그는 경기 수원과 군포에 있는 친척 집을 수도권 지하철과 택시를 타고 다녔고, 26일에는 다시 CGV 부천역점에서 오후 5시 30분 '남산의 부장들'을 관람했다. 12번 확진자 한 명에게 서울·인천·경기·강원이 뚫린 것이다. 질본은 2월 2일 기준 12번 확진자의 접촉자를 138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동안 동선이 가장 복잡한 환자로는 3번 확진자(54)가 꼽혔다. 서울 강남, 한강, 일산 등지를 돌며 95명과 접촉했다. 서울 강남 한일관에서 지난달 22일 친구 6번 확진자(55)에게 병을 옮겼고, 이로 인해 6번 확진자의 아내(10번 확진자)와 아들(11번 확진자)도 감염됐다. 한 전문가는 "3차 감염의 시발점이 됐던 3번 확진자도 서울과 일산을 오간 것이 전부인데 12번 확진자의 동선은 훨씬 더 위험하다"고 했다.

'음성(陰性)'소식 듣고 이마트 방문

8번 확진자(62·여)는 중국 우한에서 칭다오를 거쳐 지난달 23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30일 격리되기까지 8일 동안 일상생활을 했다. 그는 귀국해 서울에 있는 아들 집에서 머무르다가 25일 전북 군산에 있는 자택으로 이동했다. 다음날 군산 아센사우나(대중목욕탕)를 찾아 2시간 이상 머물렀다. 발열·기침 증세가 있어 군산 유남진내과를 갔고, 28일에는 증상이 계속돼 군산의료원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았다. 우한 폐렴 '음성' 결과가 나오자 이튿날(29일) 이마트 군산점을 찾았다. 30일 익산 원광대병원을 찾고 나서야 격리가 됐다.

6번 확진자는 3번 확진자와 22일 밥을 먹다가 우한 폐렴에 걸렸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3차 감염시켰다. 문제는 6번 확진자는 26일 자택 인근 종로구 명륜교회를 찾아 새벽·오전·오후 예배를 모두 봤다는 것이다. 점심도 교회 식당에서 먹었다. 명륜교회는 2월 2일 예배는 설교 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서울 지하철·버스 타고 강남 등 활보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에 따르면 5번 확진자(33)는 서울에서 지하철·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지난달 26~28일 사흘 동안 강남·성북·성동·중랑구를 돌아다녔다. 지하철을 네 번, 버스를 한 차례 이용했다. 결혼 준비 중이던 그는 여자 친구(9번 확진자)를 감염시켰다. 제주도는 4박 5일(지난달 21~25일) 일정으로 관광을 한 뒤 중국에 돌아가 우한 폐렴 확진 판정을 받은 중국 여성 A씨(52)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그는 이 기간 제주 성산 일출봉, 우도, 산굼부리 등 주요 관광지와 제주 시내 롯데·신라면세점 등을 돌아다녔다.

장성인 연세대 의대 교수는 "이제는 어디서든 감염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일반 시민들이 스스로 바깥 활동을 줄이고 예방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