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수 서둘러 저녁이 오는데 헐렁한 몸뻬를 가슴까지 추켜 입고 늙은 형수가 해주는 밥에는 어머니가 해주던 밥처럼 산천이 들어 있다 저이는 한때 나를 되련님이라고 불렀는데 오늘은 쥐눈이콩 한 됫박을 비닐봉지에 넣어주며 아덜은 아직 어린데 동세가 고생이 많겠다고 한다 나는 예, 라고 대답했다

―이상국(1946~ )

또 한 번 설을 쇘습니다. 어쩌자고 자꾸 명절은 다가오는지 흩어졌던 식구들이 모여서 지붕을 늘립니다. 있던 사람이 없기도 하고 처음 보는 아이가 두리번거리기도 하는 우리네 고향 집일 겁니다. 한 가족이라도 살아온 내력이 모두 반지르르하지만은 않습니다. 구김도 많고 적은 이가 있고 누구는 젖어 찢긴 이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만저만 말없이 처마 끝을 바라보며 지내는 명절이지요.

어쩌다가 홀로 된 형수의 밥을 얻어먹습니다. 명절 인사차 지나는 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급하게라도 손수 밥을 해 먹이는 것이 따스한 풍습이었습니다. 어렸던 ‘되련님’에게 ‘형수’는 반(半) 엄마였습니다만 좀 어렵기도 했습니다. 번다하던 지붕 아래 지금은 홀로인 ‘형수’는 그리움의 운판 같은 존재입니다. 하여 그에게서 받은 ‘밥’에는 ‘산천’이 들어 있습니다. 거기서 울려오는 ‘깊은 메아리’에 ‘늙은 형수’와 늙은 ‘되련님’이 조용히 귀 기울입니다. 에둘러 ‘동세(동서)’의 고생담으로 인사를 건넵니다만 압니다. 서로 큰 그리움을 숨기고들 있음을. ‘예,’라는 느린 대답 속에 다시 ‘산천’이 들어가 앉는 것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