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우한에서 발견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자 그동안 미온적인 대응으로 일관하던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30일(현지 시각) 뒤늦게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포했다. 국제적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바이러스가 퍼지거나 퍼질 우려가 있는 국가에 여행 자제, 국경 폐쇄를 권고할 수 있게 된다. WHO 차원에서 역학 조사를 실시하게 되고, 중국에는 투명한 정보 제공을 요구할 수 있다. 앞서 WHO가 국제적 비상사태를 선포한 건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A(H1N1), 2019년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 등을 포함해 최근 10년간 다섯 차례였다.

하지만 WHO가 우한 폐렴과 관련해 비상사태를 선포한 건 뒷북 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WHO는 작년 12월 말 중국에서 발병 보고가 이뤄진 후 약 한 달 만인 지난 22일에야 긴급 위원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지만 비상사태 선포를 보류했다. 23일에도 회의를 열었지만 비상사태 선포는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우한 폐렴은 전 세계로 확산됐고 중국 내 사망자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WHO는 30일 뒤늦게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도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핵심 조치인 교역과 이동 제한 조치와 관련한 권고를 하지 않았다.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WHO는 교역·이동과 관련한 제한 권고를 할 수 있는데도 이마저 하지 않아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WHO가 지나치게 중국 눈치를 본다는 말이 나온다. 에티오피아 보건부 장관 출신인 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중국 지지를 발판으로 유럽이 지원하는 후보를 밀어내고 선출된 인물이다. 테드로스 사무총장은 국제적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기자회견에서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때문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우한 폐렴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국제적 비상사태 선포는 중국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아니다"라고 중국 감싸기를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테드로스 사무총장이 국제적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기자회견에서 14분 발언 중 6분 이상을 중국 정부의 조치를 칭찬하는 데 썼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