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6가지, 치즈 3가지, 소스 16가지, 채소 8가지…. 샌드위치 전문 패스트푸드 브랜드 '써브웨이'에서는 선택할 수 있어서 괴롭다.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빵·치즈·소스 등 각각의 요소를 손님이 선택해야 한다. 어떻게 고르느냐에 따라 무려 6336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기성세대에게는 당황스러울 수 있는 숫자. 하지만 1980~2000년 태어난 'MZ 세대'는 선택할 수 있어 즐겁다고 했다. MZ 세대는 1980~1995년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5~2000년 출생한 'Z세대'의 합성어. 올해 20~40세가 된 이들이다. '밀레니얼의 반격'의 저자인 전정환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은 "4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 선택이 '불편' '두려움'이었다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이후 태어난 MZ 세대는 선택을 '즐거움' '재미'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선택이 괴롭다면 당신은 '아재'?

중장년이 들으면 불편하겠지만, 요즘 인터넷에서는 써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재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으로 회자된다. 포털사이트·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유튜브에 '아재들을 위한 써브웨이 매뉴얼(주문법)' '아재의 써브웨이 도전기' 같은 내용이 넘쳐난다. 취향에 따라 자유로운 주문이 가능한 이 브랜드의 소위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주문 시스템' 때문이다. 이 시스템이 낯선 중장년층에겐 샌드위치 주문이 쉽지 않다. 매장에 들어갔다가 먹지 않고 그냥 나오는 '주문 포기자'가 속출한다. 지난달 30일 점심 서울시청 앞 써브웨이 매장을 찾았다. 20~30대로 보이는 손님들로 가득했지만, 50대 이상으로 보이는 손님은 없었다. 중장년층 손님들이 상당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근 패스트푸드점들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카운터 주문 담당 직원은 "우리 매장은 어르신들이 거의 오시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써브웨이는 매장 수가 2014년 108개에서 지난해 387개로 3배 이상으로 늘어나고 연평균 매출 성장률(2014~2018년 기준) 약 53%를 기록하는 등, 쇠퇴기를 맞은 국내 패스트푸드 업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성장세를 유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중요한 비결 중 하나로 꼽는 게 커스터마이징 주문 시스템이다. 써브웨이 관계자는 "MZ 세대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가치 지향적 소비를 추구하고, 개성이나 취향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을 선호한다"고 했다. 이들이 주요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취향대로 고르거나 조합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잘 팔린다.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마라탕(麻辣湯)'도 여기 해당한다.

마라탕은 혀와 입이 마비되는 듯 얼얼하게 매운 맛도 맛이지만, 어떤 재료를 가지고 만드느냐를 손님이 100% 선택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다. 마라탕 매장에는 대형 마트나 수퍼마켓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냉장 진열대가 있다. 진열대에는 각종 육류와 해산물, 채소 등 수십 가지 식재료가 놓여 있다. 손님이 집게로 원하는 재료를 그릇에 담아 카운터에서 계산을 마치면, 주방에서 손님이 고른 재료들을 화자오·고추·팔각·정향·두반장 등 다양한 향신료를 조합해 만든 마라 소스로 요리해 손님 테이블에 내준다.

이들 MZ 세대는 편의점에서도 그냥 음식을 사 먹지 않고 자신만의 취향대로 조합해 먹기를 즐긴다. '○○편의점 ○○○도시락은 ○○컵라면과 함께 먹으면 맛있다' '○○우유+○○○초콜릿' 하는 식이다. 그리고 자신이 창조한 '꿀조합'이나 '나만의 레시피'를 SNS를 통해서 남들과 공유한다.

샌드위치 전문 브랜드 '써브웨이'에서는 빵, 치즈, 소스, 채소 등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6336가지 조합이 가능하다. 기성세대에게 는 불편하고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올해 20~40세가 된 MZ세대에게는 자신의 취향에 맞춰 샌드위치를 선택하는 일이 즐거움이나 재미로 여겨진다. 수십 가지 재료를 골라 먹는 '마라탕'(왼쪽)도 마찬가지다.

취향과 선택의 차원이 다르다

'짬짜면'과 '아무거나'는 한국인의 결정장애를 말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두 메뉴다. 2000년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에서 처음 내놓았다는 짬짜면은 반으로 나뉜 그릇의 한쪽 절반에는 짜장면을, 나머지 절반에는 짬뽕을 담아 내는 메뉴. 점심시간 최대 고민이라는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를 놓고 도저히 선택하지 못하는 한국인을 위한 기발한 해결책이었다. 호프집 등 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무거나는 안주를 고르기 힘들거나 귀찮은 나머지 "아무거나 시키자"고 내뱉는 이들을 위해서 개발된 메뉴.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탄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짬짜면과 아무거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메뉴가 개발될 만큼, 그동안 한국 사회는 심각한 결정장애를 앓아 왔다. 하지만 MZ 세대는 이러한 결정장애에서 벗어났다는 것.

기존 중장년층은 이런 통념에 동의할까. '아무튼, 주말'은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에 의뢰한 설문(10~60대 남녀 5014명 대상)을 통해 선택에 대한 세대별 인식 차이를 물었다. 의도적으로 구체적 설명이나 추가 질문 없이 선택과 취향을 묻자, 세대별 차이는 거의 없었다. 식사 시 '세트 메뉴가 정해져 있는 식당'보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많은 식당'을 고르겠다는 응답이 모든 세대에서 높았다. '나의 선택이나 취향에 대한 확신이 있다'는 응답은 세대가 올라갈수록 오히려 높아졌다.〈표 참조〉

하지만 전정환 센터장은 "똑같이 답했더라도 디테일(세부 내용)로 들어가면 다르다"고 했다. "중장년층이 생각하는 '취향'은 '고급스럽다'는 의미일 겁니다. 반면 MZ 세대가 생각하는 취향은 엄청나게 더 세밀합니다. '후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1960년대생과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1980년대 이후 세대의 경험치와 지식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떡볶이를 예로 들면 맵기·달기의 정도와 종류, 떡볶이집의 분위기·인테리어, 어떤 스토리가 담긴 떡볶이인지 등으로 디테일하게 나뉘죠.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게 선택하기를 즐깁니다. 50대 이상에게 물어보면 '그래 봤자 떡볶이 아닌가' 할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