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종일 국방대 석좌교수·전 국정원 1차장

70년 전 오늘 한국전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스탈린의 전보에 대한 이야기다. 그 전보가 있은 지 5개월 후인 1950년 6월, 한반도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의 처참한 살육과 파괴 현장으로 변한다. 그러나 워싱턴은 물론, 도쿄와 서울 모두 전개되는 사태에 관하여 캄캄하게 모르고 있었다. 김일성은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전쟁을 하고 싶어 몸이 달아 있었다. 중국에서 공산 정권이 성립한 후에는 아예 집념이 될 정도로 더욱 몸이 달아 있었다. 몇 차례 스탈린에게 거절당하고 나서 ‘스탈린의 말은 법률이어서’ 그대로 받아들이겠다고 하면서도 기회 있을 때마다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불면증을 호소하면서 더 심하게 졸랐다. 자신은 걱정으로 잠을 잘 수도 없다고 했다. 하루빨리 국토 통일을 이룩해 달라는 조선 인민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어 이들의 지지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신호가 왔다. 1950년 1월 30일 자 전보에서 스탈린은 평양 주재 소련 대사 슈티코프에게 훈령을 보냈다. 스탈린이 김일성을 접견하여 그가 오랫동안 바랐던 ‘남조선에 대한 큰 과업’에 관하여 대화를 나눌 것이며, 이 문제에 관하여 본인(스탈린)이 그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을 강조하라는 내용이었다. 3일 후 슈티코프는 또 다른 훈령을 받는다. 김일성에게, 이 문제는 ‘완전한 비밀’로 유지해야 하며 “중국 동무들은 물론 심지어 북조선 지도부 내의 그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그 5개월 후 한반도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대규모의 처참한 살육과 파괴 현장이 되었다.

스탈린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어 김일성에게 남침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게 되는 이유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2개월 후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스탈린은 전면 남침을 허락하고 무기 등 전쟁 물자 원조를 약속했을 뿐만 아니라 자세한 전략적, 정치적 훈수까지 하였다. 스탈린은 이런 결정을 거의 혼자서 구상하고 지시하였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가 간직했던 수기 등이 발견되고 공개되지 않는 한 그의 복잡한 머릿속에서 무슨 구상이나 계획이 꿈틀거리고 있었는지 확언할 수 없다. 단지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를 기초로 학자들은, 갑작스럽게 한국에서 전쟁을 시작한 주된 동기가 마오쩌둥의 중국을 견제하려는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필자는 이 해석도 틀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스탈린 구상의 일부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스탈린은 중국 내전에서 어느 편도 중국을 통일하는 승자로 부상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때로는 국민당을 지지하는 것 같기도 하였고 또 다른 경우에는 그 반대인 공산당 편에 서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관된 입장은 어느 한쪽이 대륙의 승자로 부상하는 걸 저지한다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이 승세를 타고 결정적 승리를 쟁취하려는 시기에 그는 양자 간 화해를 중재하려 했고, 마오에게는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양쯔강 이남으로는 진격하지 말라고 권유하기도 하였다. 본토를 확보한 마오쩌둥이 대만 통합을 위해 소련의 도움을 구하자 스탈린은 여러 핑계로 이를 거절하였다. 스탈린이 통일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려 한 데는 주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대전 후 약체 국민당 정부에서 확보한 중국 동북 지역의 특혜였다. 통일된 중국 정부는 누구이건 이것을 수복하려 할 것이었다. 실제로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첫 회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부상한 것은 이 문제였다. 둘째로는 최고 권력은 하나여야 한다는 명제다. 스탈린은 사회주의 진영에 두 거인이 있게 되는 경우 필연적으로 내부에 갈등과 분열이 발생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1950년 3월 말 김일성이 모스크바에 가서 스탈린을 만났을 때였다. 스탈린은 전쟁이 시작되면 미국이 개입할 것 같냐고 물었다. 김일성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대답을 하였다. 스탈린이 미국의 반응에 관하여 김일성의 정보에 의존할 필요가 있었을까? 스탈린은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았을 것이다. 전쟁 발발 후 미국이 유엔의 안보 상임위에 이 문제를 상정하였을 때, 그로미코 등 소련 외교관들은 그때까지 소련이 보이콧하고 있었던 유엔에 급히 복귀하여 미국의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로미코와 통화하면서 스탈린은 이를 거부하였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로미코는 스탈린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채 이것이 스탈린의 실책이었다고 자서전에 쓰고 있다. 스탈린은 속으로 웃고 있었을 것이다. 스탈린에게는 어차피 손해 볼 일 없는 전쟁이었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김일성은 쉽게 남한을 제압하여 결국 자기의 영향력이 한반도 남단까지 미칠 것이다. 일본을 위협할 수도 있고 일본 국내 정치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미국의 위상과 영향력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도 있다. 역사상 중요한 사태의 흐름은 제국의 변경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이 개입한다면 그것은 스탈린이 바라는 바였다. 미국은 한국에서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 특히 육군은 한반도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한반도 때문에 소련과 전면 전쟁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되건 마오쩌둥은 중국 통일의 희망을 적어도 당분간 접어야 할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미국이 중국과 충돌하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스탈린이 바라는 바였다. 미국이 이 지역에서 전쟁에 빠져 있는 시기에 자신은 양대 세력 각축의 주 전장인 유럽에서 세력을 확장할 수 있다. 스탈린은 김일성에게 한 가지를 확실하게 했다. 어떤 경우든 소련은 이 전쟁에 개입할 수 없다. 어떤 경우든 책임은 김일성에게 있다.

전쟁이 끝났을 때 한반도의 분단은 더욱 고착되어 있었다. 이 전쟁에 개입한 나라들은 그 나름대로 피해도 있었지만 일정한 이득도 챙겼다. 가장 큰 혜택을 본 곳이 2차대전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임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이 전쟁에는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 없었다. 끝까지 전쟁 지속을 강행하던 스탈린은 비밀을 안은 채 급사했다. 김일성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북한에서 엉뚱하게 미국의 침략을 막은 영웅이 되었다. 실속 없이 북진 통일을 외치다가 막상 전쟁이 나자 제대로 대처하지도 못한 이승만 역시 책임을 지는 일이 없었다. 미국도 자신들의 실책을 제대로 인정하는 일이 없었다. 어리석은 지도자들이 저지른 참사의 최대 피해자는 일반 병사들 그리고 힘없는 국민이었다. 그래서 이 전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