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도 이상 발열이나 기침 등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염된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잇따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은 증상이 생긴 이후 전파력을 갖기 때문에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런 사례가 흔한 것은 아니지만, '걸어 다니는 전파자'로 보고 경계를 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도 모른 채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우한 폐렴의 경우 추가 조사가 필요하긴 하지만, 무증상 감염자도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무증상 감염자에 의한 전염 가능성이 없다는 기존 입장과 다소 달라졌다. 우한 폐렴 확진자가 전 세계적으로 8000명에 이른 가운데(30일 기준), 증상이 없는 사람에게서 전염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마스크 구매 행렬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 우한에서 남서쪽으로 1200여㎞ 떨어진 중국 광시좡족 자치구 난닝시 주민들이 29일(현지 시각) 마스크를 사려고 한 의료 용품 업체 앞에 길게 줄섰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 주변 사람 감염

중국 남부 광둥성에 사는 열 살 소년은 29일 친척을 보기 위해 후베이성 우한시를 찾았다가 감염됐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별다른 증상이 없었는데, 함께 지내던 조부모와 부모 4명 모두 발열과 기침 증상을 보였고 우한 폐렴 판정을 받았다.

독일에서는 바이에른주의 한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독일인 4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들도 중국 상하이에서 출장을 온 무증상 중국인 직원과 회의를 한 뒤 감염됐다. 중국인 직원은 독일에서 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고서야 발열 증세를 보였다. 일본은 우한에서 온 관광객을 태우고 다닌 버스 기사와 안내원이 감염됐다. 당시 증상이 있었던 관광객은 없었다고 한다. 또 지난 29일 우한에서 전세기로 귀국한 일본인 206명 가운데 2명은 아무런 증상이 없었는데 검사에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전염을 일으키진 않았으나, 무증상 감염자의 실질적 사례다.

◇'무증상 감염기' 존재할 수도

바이러스가 체내로 들어오면, 처음에 개체 수를 늘리는 증식을 하지만 전파력을 갖기에는 아직 충분치 않다. 이때를 '잠복기'라고 부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 최장 14일의 잠복기를 거쳐 증상이 나타나 발병하면, 전파력도 왕성한 '감염기'로 접어든다. 그러다 면역력으로 감염을 이겨내면, 증상이 줄고 바이러스도 소멸된다.

문제는 '잠복기'와 '감염기' 사이에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 증식해 전파력을 일부 가질 수 있으나, 아직 증상이 없는 시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시기를 '무증상 감염기'라고 한다. 독일, 일본 등의 사례는 이런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기존 코로나 바이러스는 무증상 감염기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짧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인 우한 폐렴은 1~2일간의 다소 긴 무증상 감염기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기존 방역 체계로는 걸러낼 수 없어

무증상 감염기가 확인된다면 기존 방역 체계로 잡아낼 수 없다. 현행 방식은 유증상자를 조기 발견하고 격리해, 2차 감염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오명돈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무증상 전염 사례가 늘어나는 것은 전파력이 세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이제 무증상 감염에 대한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 닥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무증상 감염자

무증상 감염자는 증상은 없으나 바이러스가 어느 정도 증식해 전파력이 있는 '무증상 감염기' 상태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무증상 감염기는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없는 '잠복기'와 기침, 고열 등 증상이 나타나고 바이러스 전파력이 큰 '감염기'의 중간 단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