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종린 연세대 교수·'골목길 자본론' 저자

부산 영도에 새로운 도시가 들어섰다. 영도 젊은이들이 일하는 메이커 스페이스와 복합 문화 공간, 거주하는 코리빙 플레이스, 그들에게 필요한 상업시설 등 총 5개 단지로 구성된 작은 도시다. 도시 재생 스타트업 '돌아와요 부산항 연합'(RTBP/Return to Busan Port)이 쇠락한 조선소 지역에서 빈 공간을 활용해 일·주거·놀이를 통합한 삼위일체 도시 모델을 완성한 것이다.

도시 콘텐츠 그룹 어반플레이도 서울 연희동과 연남동 일대에서 복합 문화 공간, 로컬 브랜드 편집숍, 코워킹 스페이스, 코리빙 플레이스, 공유 키친, DIY숍, 반려동물 문화 공간 등 밀레니얼이 한 지역에서 일하고 살며 즐기는 데 필요한 공간과 시설을 건설한다.

도시 재생 스타트업 '돌아와요 부산항'

RTBP와 어반플레이뿐이 아니다. 시흥의 빌드, 목포의 괜찮아마을, 부여의 자온길, 공주의 퍼즐랩, 강릉의 더웨이브컴퍼니, 거제의 공유를위한창조, 남해의 팜프라촌 등 전국 곳곳에서 공간 기획력과 콘텐츠 개발력으로 무장한 로컬 크리에이터들에 의해 쇠락한 지역의 유휴 공간이나 상권이 아니었던 주거 지역이 젊은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탈바꿈한다.

창의성과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지역을 살리는 이 민간 사업자들의 목표는 역설적으로 도시 재생이 아니다. 로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것에 필요한 커뮤니티를 건설하는 것이다. 로컬에 대한 밀레니얼의 인식은 기성세대와 다르다. 로컬을 변두리, 시골, 지방이 아닌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장소로 인식한다. 기성세대가 더 좋은 기회를, 더 좋은 직장을, 더 좋은 도시를 찾아 지역을 떠났다면, 밀레니얼은 지역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필요하면 RTBP와 어반플레이와 같이 자신이 살고 싶은 도시를 직접 만든다.

주거시설, 상업시설, 산업시설을 융합한 작은 도시를 건설하는 것 자체는 새로운 모델은 아니다. 기존 부동산 개발사도 도시 안에서도 주상복합을 통해 다양한 용도의 단지를 건설한다. 코워킹 스페이스로 시작한 공유경제의 대표적인 기업 위워크(WeWork)도 주거시설, 상업시설, 학교, 병원 등 제반 생활 인프라를 구축하는 도시 운영 계획을 갖고 있다.

마이크로 도시를 건설하는 한국의 로컬 크리에이터가 특별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일반 부동산 개발사와 달리 로컬 크리에이터는 로컬 콘텐츠, 지역 커뮤니티,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 등 지역 사회에 밀착된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한다.

RTBP의 기본 콘텐츠는 영도의 조선 산업이다. 폐쇄된 조선소의 건물을 활용해 창업공간과 상업시설을 조성했고, 주거시설도 조선소 노동자들이 살던 동네의 한 건물을 활용한다. 기존 커뮤니티를 이주시키는 개발 방식이 아닌 건물 단위 재생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와 상생하는 모델이다. 구성원 사이의 협업, 공동행사를 통해 내부 커뮤니티도 활성화한다. RTBP 사업의 본질은 부산과 영도의 라이프스타일을 시대 변화에 맞게 재생하는 일이다. 영도의 매력과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사업화해 지역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와 기업을 창출한다.

공공에서 민간으로 도시재생 확대해야

어반플레이의 기본 콘텐츠는 1970년대 단독주택 지역인 연희동과 연남동의 골목 문화다. 7개에 달하는 재생 공간들이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서로 상당 거리 떨어져 있다. 폐쇄적인 단지를 건설하지 않고 지역과 상생하며 구성원 커뮤니티를 구축한다.

어반플레이의 공유 마을은 또한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일을 하면서 이웃과 소통하고 일상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공간적 여유가 있는 단독주택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고 정원과 식물을 가꾸는 생활이 가능하다. 집을 직접 장식하고 수리하는 DIY 문화도 단독주택 지역에서 활성화될 수 있다. 어반플레이는 단독주택 지역의 DIY 수요를 만족하기 위해 DIY숍을 운영하고 그곳에서 DIY 교육도 실시한다.

RTBP와 어반플레이 모델이 성공하면 그 파급 효과는 해당 기업의 성장에 그치지 않는다. 두 기업이 운영하는 코워킹 스페이스와 사업장을 통해 새로운 창조 인재와 창조 기업이 지역으로 유입된다. RTBP는 지금까지 40여 개의 메이커 기반 창업팀을 보육했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보육한 기업들은 지역 자원과 가치를 공유하고 활용하기 때문에 지역에 남아 지역의 자생적인 산업 생태계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건설한 마이크로 도시가 새로운 지역 산업의 모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RTBP와 어반플레이와 같은 지역 기반 도시 재생 기업은 새로운 창조 산업이다. 다른 도시도 도시 재생 기업을 통해 경제적, 문화적 이유에서 재개발이 어려운 지역을 재생해야 한다. 재개발이 가능한 지역에서도 이미 과잉 공급된 신도시보다는 지역 문화와 정체성을 살린 재생 도시가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 모델이 될 수 있다.

도시 재생 지역이 주는 새로운 기회를 활용하는 방법도 재고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공공사업 중심으로 도시 재생을 추진하지만 지속가능한 지역 경제를 위해서는 민간 주도 도시재생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미래 세대가 요구하는 공간과 콘텐츠를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도시 재생 사업의 설계에서 개방적이고 창의적이며, 무엇보다 커뮤니티 의식이 강한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더 큰 역할을 부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