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관련자 13명에 대한 1차 기소는 윤석열 검찰총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대검과 중앙지검의 수사 책임자들이 참석한 29일 대검 회의에서 결정됐다. 이 지검장만 '나 홀로 반대'했을 뿐, 다른 참석자 8~9명은 모두 '기소 의견'을 냈다고 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1차 대학살 인사'로 임명된 배용원 대검 공공수사부장도 기소에 동의했다. 그 결과, 송경호 중앙지검 3차장이'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과 관련해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기소했을 때와 달리, 이번엔 이 지검장이 수사팀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성윤만 "보강 수사 필요"
이 지검장은 이날 오전 10시쯤 윤 총장을 찾았다. 대검찰청 8층에 있는 검찰총장실에는 배용원 대검 공공수사부장, 김성훈 대검 공공수사1과장 등 공안 담당 과장들, 서울중앙지검의 신봉수 2차장, 김태은 공공수사2부장 등 공안 관련 부장들도 회의 참석을 위해 모였다. 이날 회의는 1시간 30분가량 이어졌다.
이 지검장은 이날 회의에서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며 유일하게 '기소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의 경우, 소환 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 후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추가 압수 수색도 더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을 대질 조사해야 한다"고도 했다는 것이다. 백 전 비서관이 청와대 선거 개입 사건이나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으로 조사를 받을 때 검찰에 요구했던 내용인데 이 지검장이 이날 회의에서 똑같이 주장한 것이다. 이 지검장은 또 "전문수사자문단 회의나 부장검사 회의를 열어 기소 여부를 결정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법무부는 이 지검장이 백 전 비서관 등의 기소를 뭉개던 전날 갑자기 "전국 검찰청 66곳에 공문을 보내 중요 사안 처리는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부장회의 등 내부 협의체를 적극 활용하라고 당부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 지검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그대로 읊은 셈이다. 한 변호사는 "정권이 이 지검장을 현 정권 인사들의 기소를 막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앉혔다는 게 이날 회의에서도 드러난 셈"이라고 했다.
이에 수사팀은 "수사팀 30여 명이 두 달간 수사 끝에 일치된 결론을 내린 사건"이라며 "윤 총장 등 대검 간부도 매일 사건 보고를 받아왔다"고 반박했다. 이어 수사팀은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백 전 민정비서관 등을 이날 기소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수사팀은 "황 전 청장은 '(수사팀 교체 시기인) 다음 달 4일 이후 출석하겠다'며 조사를 미뤄왔다"며 "이미 황 전 청장 기소에 필요한 물증과 진술이 충분하다"고도 했다. 수사팀은 "4월 총선 전 이른 시일 내에 기소해야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조기 기소' 필요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추 장관이 배치한 간부도 "기소 찬성"
배용원 신임 공공수사부장 등 대검 간부들도 수사팀의 의견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 부장은 지난 8일 추 장관의 '1차 대학살 인사'로 박찬호 전임 부장 후임으로 임명됐다. 그런 그도 수사팀 의견이 맞는다고 본 것이다. 윤 총장도 수사팀 의견이 맞는다고 보고 기소를 지시했고, 수사팀은 이날 한 전 수석과 백 전 비서관 등 13명을 선거 개입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최근 추미애 장관의 중간 간부 인사에 따라 내달 3일 신임 차장·부장들이 부임하기 전에 현 수사팀에서 기소 문제를 매듭지은 측면도 있다는 관측이다. 대검은 이날 참석자 발언 내용을 회의록에 남겼다. 이 지검장의 '나 홀로 반대'는 '이견(異見)도 있었다'는 취지로 회의록에 포함됐다고 한다. 다만, 30일 소환 조사 예정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날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현 민정비서관) 등 나머지 피의자들은 4월 총선 이후 기소 여부를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후 2시쯤 13명을 기소한다는 보도자료를 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보도자료 배포는 1시간 30분 늦은 오후 3시 30분쯤에 이뤄졌다. 법조계에선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기소를 막지 못한 이 지검장이 청와대와 추 장관을 향해 '최대한 노력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법무부는 이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