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관련자 13명에 대한 1차 기소는 윤석열 검찰총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대검과 중앙지검의 수사 책임자들이 참석한 29일 대검 회의에서 결정됐다. 이 지검장만 '나 홀로 반대'했을 뿐, 다른 참석자 8~9명은 모두 '기소 의견'을 냈다고 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1차 대학살 인사'로 임명된 배용원 대검 공공수사부장도 기소에 동의했다. 그 결과, 송경호 중앙지검 3차장이'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과 관련해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기소했을 때와 달리, 이번엔 이 지검장이 수사팀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29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대검·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회의를 갖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출신 인사 5명을 포함해 13명에 대한 기소를 결정했다. 이 회의에서 이 지검장은 유일하게 '기소 반대' 의견을 냈다. 왼쪽 사진은 윤 총장이 지난해 10월 국회 법사위의 대검 국감에서 답변하는 모습. 오른쪽은 지난 13일 이 지검장이 취임사를 하는 모습.

◇이성윤만 "보강 수사 필요"

이 지검장은 이날 오전 10시쯤 윤 총장을 찾았다. 대검찰청 8층에 있는 검찰총장실에는 배용원 대검 공공수사부장, 김성훈 대검 공공수사1과장 등 공안 담당 과장들, 서울중앙지검의 신봉수 2차장, 김태은 공공수사2부장 등 공안 관련 부장들도 회의 참석을 위해 모였다. 이날 회의는 1시간 30분가량 이어졌다.

이 지검장은 이날 회의에서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며 유일하게 '기소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의 경우, 소환 조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 후에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추가 압수 수색도 더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을 대질 조사해야 한다"고도 했다는 것이다. 백 전 비서관이 청와대 선거 개입 사건이나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으로 조사를 받을 때 검찰에 요구했던 내용인데 이 지검장이 이날 회의에서 똑같이 주장한 것이다. 이 지검장은 또 "전문수사자문단 회의나 부장검사 회의를 열어 기소 여부를 결정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법무부는 이 지검장이 백 전 비서관 등의 기소를 뭉개던 전날 갑자기 "전국 검찰청 66곳에 공문을 보내 중요 사안 처리는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부장회의 등 내부 협의체를 적극 활용하라고 당부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이 지검장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그대로 읊은 셈이다. 한 변호사는 "정권이 이 지검장을 현 정권 인사들의 기소를 막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앉혔다는 게 이날 회의에서도 드러난 셈"이라고 했다.

이에 수사팀은 "수사팀 30여 명이 두 달간 수사 끝에 일치된 결론을 내린 사건"이라며 "윤 총장 등 대검 간부도 매일 사건 보고를 받아왔다"고 반박했다. 이어 수사팀은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백 전 민정비서관 등을 이날 기소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수사팀은 "황 전 청장은 '(수사팀 교체 시기인) 다음 달 4일 이후 출석하겠다'며 조사를 미뤄왔다"며 "이미 황 전 청장 기소에 필요한 물증과 진술이 충분하다"고도 했다. 수사팀은 "4월 총선 전 이른 시일 내에 기소해야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조기 기소' 필요성을 주장했다고 한다.

◇추 장관이 배치한 간부도 "기소 찬성"

배용원 신임 공공수사부장 등 대검 간부들도 수사팀의 의견에 동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배 부장은 지난 8일 추 장관의 '1차 대학살 인사'로 박찬호 전임 부장 후임으로 임명됐다. 그런 그도 수사팀 의견이 맞는다고 본 것이다. 윤 총장도 수사팀 의견이 맞는다고 보고 기소를 지시했고, 수사팀은 이날 한 전 수석과 백 전 비서관 등 13명을 선거 개입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최근 추미애 장관의 중간 간부 인사에 따라 내달 3일 신임 차장·부장들이 부임하기 전에 현 수사팀에서 기소 문제를 매듭지은 측면도 있다는 관측이다. 대검은 이날 참석자 발언 내용을 회의록에 남겼다. 이 지검장의 '나 홀로 반대'는 '이견(異見)도 있었다'는 취지로 회의록에 포함됐다고 한다. 다만, 30일 소환 조사 예정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날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은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실 선임행정관(현 민정비서관) 등 나머지 피의자들은 4월 총선 이후 기소 여부를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후 2시쯤 13명을 기소한다는 보도자료를 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보도자료 배포는 1시간 30분 늦은 오후 3시 30분쯤에 이뤄졌다. 법조계에선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기소를 막지 못한 이 지검장이 청와대와 추 장관을 향해 '최대한 노력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말이 나왔다. 법무부는 이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