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우 '엄마의 뇌에 말을 걸다' 저자

40대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들 한다. 30대 때는 마냥 젊을 줄 알고 그 뜻을 알아채지 못했고, 40대에는 얼굴 안에 세월이 녹아내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바쁘게 살았다. 그러나 50대, 60대가 되고 보니 어느덧 세월의 마파람을 다 맞은 채 망연자실해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동안 인생에 대해 '행복은 1%, 불행은 99%'라는 말을 들으며, '인생은 1%의 행복감으로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행복하지 않은 느낌들을 지워내곤 했다. 그런데 얼굴에는 이 모든 것이 흔적을 남긴다. 99%의 불행감을 이길 만큼 강렬한 1%의 행복감도 주름살을 만들고, 슬프거나 화난 표정 역시 고스란히 자국을 남긴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거나 어떤 인물을 '리얼'하게 사실 그대로 그린 '초상화'를 보면 내가 살아온 삶에 거짓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그림 속 내 모습이 누가 봐도 기가 막히게 예쁘다고 박수를 쳐 준다면 '나'는 제법 인생을 잘 살아온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쁘거나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보는 이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아무리 이마와 입 주변에 주름이 깊게 져 있다고 해도, 환한 미소를 띤 여인의 얼굴을 보고서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누구의 초상화든 보는 이의 공감과 그린 이의 표현력, 그 초상의 보이지 않는 삶에 배어 있는 그 '무엇', 이 삼박자가 다 잘 맞아야 예술 작품이 된다. 이쯤 되면, '콘테로 그리는 초상화'를 막 배우기 시작한 나는 줄행랑을 치고 싶어진다. 한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단 하나의 점마저 슬픈 듯 아름답게 표현해내야 제대로 기가 막힌 초상화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우선 거울에 비친 '나의 얼굴'부터 책임져 볼까 한다. 내 초상화가 "기가 막히다!"며 스스로 감탄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