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진 산업1부 기자

가수 양준일의 1990년대 무대 영상을 자꾸 찾아봐서 그런 걸까. 어느 날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영상 추천 알고리즘이 기자를 1990년대 방송 영상으로 이끌었다. 2020년에 찾아보는 20~30년 전 방송은 보는 사람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낯선 서울 말투, 요즘 다시 유행이라는 '어깨 뽕' 가득한 옷차림, 별 이유 없이 즐거워 보이는 시민들, 방송 진행자의 권위적 태도가 호기심과 불편함을 동시에 유발한다.

그렇게 재생한 옛날 영상 중 흥미로웠던 건 1992~1993년 '강남 오렌지족'의 실태를 다룬 뉴스였다. 지금은 높은 공실률로 시름 중이지만, 그 시절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활력이 넘쳐 보였다. 뉴스에 나온 서울대 교수는 "갑자기 부자가 된 사람들이 본인이 누리지 못한 풍요롭고, 세련된 삶에 대한 동경을 자식에게 실천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지는 보도가 기이했다. '외귀걸이'를 하거나, 일부러 영어를 섞어 쓰거나, 외제 차를 끌고 다니는 수입 오렌지족 출입을 제한하겠다는 놀이공원이 있는가 하면, 압구정 로데오 거리의 불법 주정차 단속을 강화해 '무분별한 향락 지대의 오명'을 이 지역 스스로가 씻게 할 방침이라는 지자체 소식이 전해졌다.

유튜브 댓글 창은 세대 간 전쟁이라도 벌어질 조짐이었다. '다시는 안 올 우리나라 황금기' '대한민국 역사상 제일 개꿀 세대' '이렇게 자유분방한 척하던 인간들이 왜 직급 달고 오르면 꼰대가 되는 걸까'. 요즘 젊은 세대는 과거 청년 세대를, 고도성장기의 경제적 풍요(#개꿀)를 누렸지만 권위적 사회 분위기(#꼰대)도 함께 학습한 '이중적 존재'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 세대'인 밀레니얼의 분노는 수십 년 전 오렌지족의 '플렉스(flex·돈 자랑) 문화'보다 오늘날 기성세대의 무능과 위선을 향하고 있다.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면서, 뒤로는 자기 자식만 용으로 키우려던 '불평등 생산자'가 누구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잘 안다.

기자는 그동안 1969년생 가수 양준일씨가 인기를 끄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양씨는 옛날에 옷을 잘 입고 춤을 멋지게 췄지만, '비운의 천재'까지는 아니었다. 나이는 90년대생의 악플 대상인 '부장님 세대'다. 그러다 발견한 옛날 영상 댓글에서 인기 비결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연유에서건 양씨는 '개꿀 빤 꼰대'의 삶을 살지 못했다. 그 시절 '시대의 행운'이 비껴간 청춘이 있었다는 건, 진학·취업·결혼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아 눈앞이 캄캄한 요즘 청년들의 마음을 흔든다. 온갖 혜택을 누렸으면서, 기회의 사다리를 슬그머니 걷어차던 '내로남불' 동년배와는 다른 존재인 것이다. 밀레니얼은 실패한 가수로 남아있던 양씨를 찾아내 위로하고 기꺼이 손뼉 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