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대 총선을 앞두고 인재 영입으로 골머리를 앓던 신한국당 공천 실무자들이 어느 날 TV에 출연한 한 젊은 여성 변호사를 우연히 보게 됐다. “얼굴도 예쁘고 똑똑해 보이는데 누구냐?” 실무자들 입에서 동시에 이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이후 4선 의원까지 지낸 의원이 비례대표로 발탁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관계자는 “TV를 통한 첫 깜짝 발탁 사례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1996년 총선은 이전과 달랐다. 여당 신한국당은 홍준표·맹형규·이찬진·김문수를 영입했고, 야당 국민회의는 정동영·김한길·김근태 영입으로 맞섰다. 여야 경쟁에 곳곳에서 동시 구애가 벌어지기도 했다.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는 꼬마민주당까지 포함해 세 군데서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16대 총선에선 원희룡이 여야 동시 영입 제의를 받았다.

▶17대 총선부터 여야가 장애인·여성 등 소수자 가운데 이른바 '스토리가 있는' 인물을 찾는 데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공감(共感) 공천'이다. 열린우리당이 소아마비 장애인에 무학(無學)인 사람을 비례대표 1번에 공천하자 한나라당은 시각장애인 공천으로 맞섰다. 이후 이런 공천을 얼마나 잘하느냐는 경쟁이 벌어졌다.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은 귀화 여성에게 공천을 주는 이벤트를 선보였다. 민주당은 전태일 여동생에다 30대 청년들 영입으로 맞섰다.

▶새누리당이 참패한 20대 공천은 거꾸로였다. 야당 민주당은 상고 출신 삼성전자 상무, 종편 출연 경찰 등 화제성 인물을 잇달아 찾아냈다. 그러자 청와대는 당이 만든 비례대표 리스트를 퇴짜 놓으며 "스토리 있는 사람을 다시 찾으라"고 했다고 한다. 며칠 만에 '여성 IT 전문가',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은 군인이 발탁돼 비례 1, 2번에 배치됐다. 그 대신 경제·외교안보 전문가가 들어설 공간은 줄어들었다. 이게 '정치 인재' 영입의 한국적 현실이다.

▶며칠 전 민주당 2호 영입 인사가 자신의 과거 ‘미투’ 논란에 휩싸여 영입인재 자격을 반납했다. 여야의 ‘보여주기’ 영입 경쟁 속 검증 미비가 낳은 사고였다. 이번 총선에서도 여야의 영입 경쟁은 치열하다. 민주당은 소방관, 발레리나 출신 장애인 영입을 시리즈로 발표했고, 한국당은 탈북 장애인, 미투 피해자 영입으로 맞섰다. 이런 인물들이 국회에 들어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정치권의 인재 영입이 날이 갈수록 예능 프로그램식으로 변질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