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최우수선수(MVP) 트로피를 들고 28일 인천공항에서 미소 짓는 원두재.

"사람들이 '중원의 파이터(싸움꾼)'라고 하는데 제 성격은 낯도 가리고 소심한 편이에요. 하하."

한국 축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에서 세 가지를 얻었다.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권, 챔피언십 우승, 그리고 원두재(23·울산)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원두재는 이번 대회에서 거친 몸싸움을 이겨내며 우리 수비진을 보호하는 '1차 저지선' 역할을 맡았다. 보통 MVP는 스트라이커나 공격형 미드필더가 받기 마련인데, 이번 대회 주최 측은 헌신적인 플레이로 한국을 우승까지 이끈 '언성 히어로(unsung hero·숨은 공신)' 원두재에게 큰 점수를 줬다.

원두재는 28일 귀국 후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그동안 축구를 하면서 '희생'했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큰 상을 타게 될 줄 몰랐다"며 "나 혼자가 아니라 선수단 모두가 희생해서 우승한 만큼 앞으로 MVP 트로피를 볼 때마다 동료들을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소심한 파이터

유상철, 김남일 등 역대 대표팀 수비형 미드필더는 모두 터프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원두재는 스스로를 소심하다고 표현한다. 그는 "평소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야 친해질 정도로 소심한 편"이라며 "경기장에 들어갈 때 '오늘도 차분하게'라고 다짐한다"고 말했다. 그의 스마트폰 메신저 남김말에도 '자신감 갖자' '대담하게' 등의 자기주문이 적혀 있다.

원두재는 이번 대회에선 수비형 미드필더만 맡았지만, 중앙 수비수부터 최전방 공격수까지 모든 포지션을 소화 가능한 '멀티 자원'이다. 2017 국제축구연맹(FIFA) 한국 20세 이하 월드컵을 앞두고 열린 JS컵에선 조영욱(21·FC 서울)과 함께 공격수로 나서기도 했다. 그를 한양대에서 1년 반 동안 지도했던 정재권(50) 감독은 "187㎝ 큰 키에도 공 다루는 발기술이 뛰어나고 제자리뛰기와 탄력도 좋다"며 "모든 포지션을 다 뛰어본 경험 덕분에 경기 운영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막을 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한국 축구 최고의 수확은 ‘원두재의 발견’이었다. 사진은 원두재가 대회 결승전 직후 시상식에서 동료들의 박수를 받으며 최우수선수(MVP) 트로피를 받으러 나가는 모습.

정 감독은 "원두재의 가장 큰 장점은 '연습량'"이라고 했다. 서울 아현중 1학년 때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원두재는 남들보다 늦었다는 생각 때문에 늘 훈련을 두세 배 이상 소화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었다. 원두재는 "합숙 생활 중 주말 외박을 받으면 집이나 PC방에 가지 않고 코치님들께 특별 훈련을 받았다"고 했다.

◇인성도 국가대표급

원두재가 고교 축구계에서 이름이 덜 알려진 청주 운호고에 진학한 이유는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에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다. 건설 근로자 아버지, 편의점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지내는 외동아들 원두재에게 운호고는 3년 장학금을 지원했다.

약체 팀에서도 원두재는 돋보였다. 2015년 금석배 16강전에서 그의 잠재력을 알아본 정재권 한양대 감독은 원두재를 만능 '멀티 플레이어'로 성장시켰다. 한양대 진학 1년 반 만에 일본 2부리그 아비스파 후쿠오카에 진출한 원두재는 계약금 중 일부인 1억원을 한양대에 기부했다. 이후 후배들의 동계 훈련에 앞서 축구화 30켤레를 사서 보내주기도 했다. 원두재는 "아버지 같은 정재권 감독님과 후배들에게 작은 보답을 한 것뿐"이라고 했다.

후쿠오카에서 세 시즌(2017~2019) 동안 71경기(2골)에 출전하며 주전 선수로 활약한 원두재는 올 시즌엔 울산 현대로 이적했다. 원두재의 올해 목표는 울산 주전으로 자리 잡고 올림픽 대표팀에 승선하는 것이다. 그는 "챔피언십 우승하니까 기쁜데 하룻밤 자고 나니까 마치 없었던 일처럼 기분이 허하다"며 "늘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목표를 향해 매일 하루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