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퍼뜩 생각난 아이디어였어요. 마케팅에 대한 부담감이 꽤 컸는데, 그럴 바엔 차라리 (포스터 일부를) 가려 보면 어떨까 싶었죠." 영화 '기생충'의 포스터를 작업한 김상만 감독이 28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들려준 말이다. 그는 "많은 이들이 포스터에 대해 묻지만 이 이상은 얘기 안 한다. 포스터를 보고 상상한 것,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기생충' 포스터도 끝없는 화제를 낳고 있다. 김상만 감독이 작업한 버전〈왼쪽 작은 사진〉이 가장 유명하다. 검은 막대로 등장인물들의 눈을 가려 표정을 알 수 없게 했다. 전 세계 영화팬들이 이를 패러디한 이미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현상까지 생겼다. 김 감독은 "뜻밖의 반응"이라고 했다.

프랑스 영화 배급사가 만든 포스터도 김 감독이 만든 오리지널 포스터의 변주다. 두 가족의 이미지를 데칼코마니처럼 붙여 주제를 강조했다. '기생충' 원제가 '데칼코마니'였다. 영국 배급사가 디자인회사 '라 보카'에 의뢰해 만든 포스터는 김 감독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 작품이다. 영화 속 박 사장(이선균) 집을 9등분했다. 변기·인디언 텐트·빗물·수석·지하실·계단 등 영화 속 주제를 압축하는 소재가 곳곳에 녹아 있다. 아카데미 후보를 발표하기 일주일 전 내놓은 포스터로, 아카데미상 수상을 응원하기 위해 그림 속 탁자 밑에 오스카 트로피가 살짝 보이게 그려넣었다.

왼쪽부터‘라 보카’가 영국 개봉에 맞춰 만든 포스터. 오스카 트로피가 살짝 보인다. 가운데는 영국 작가 앤드루 배니스터가 만든 포스터. 맨 오른쪽은 캐나다 작가 마리 버거옹이 프랑스 개봉에 맞춰 작업한 포스터.

프랑스 배급사가 만든 또 다른 아트 포스터는 캐나다 출신의 아티스트 마리 버거옹이 작업한 것. 박 사장 집과 기택의 지하실 집을 하나로 합친 가상의 건물이 빗물에 잠기는 모습을 그렸다. 미국 회사 몬도가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작가 랜디 오티즈와 협업한 포스터는 섬뜩하다. 영화 속 연교(조여정)가 품에 안고 있던 강아지 포메라니안을 전면에 등장시킨다. 강아지 눈은 검은 막대로 가렸고, 그 앞엔 피 묻은 사람 손을 그려넣었다. CJ ENM 측이 해외 작가와 만든 동양화풍 포스터도 눈길을 끈다. 기택 가족이 애지중지했던 산수경석(山水景石)처럼 보이는 돌섬에 가족들이 앉아 있다. '리틀 화이트 라이즈'라는 영국의 영화 전문지는 이 작품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이 포스터에 집착 중"이라고 썼다.

해외 작가들이 '기생충'의 팬아트를 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포르투갈 작가 빈센테 니로는 짜파게티나 산수경석을 든 가족의 모습을 추상화처럼 그렸다. 광고 작가 조셉 로만은 기우의 뒷모습 위로 계단을 그려넣은 경우. 폴란드 출신 알렉산더 스체파니악은 연교 얼굴 위에 기택의 네 가족이 웃는 얼굴을 겹쳐 넣었다. 이 작품들이 화제를 모을 때마다 네티즌들은 "작품을 살 수 있느냐" "작가가 누구인지 알려달라" 같은 댓글을 달고 있다. 김상만 감독 역시 "재치가 번득이는 작품들을 보며 매번 놀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