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빛을 활용하는 영국 작가 앤 베로니카 얀센스의 설치작 'Rose'.

일곱 명의 그림자가 장막 뒤에 있다. 장막의 제약을 뚫고 나오려 안간힘을 쓴다. 그 몸짓은 춤이 된다. 일곱 개 그림자가 모여 하나의 응축된 에너지가 된다. 이윽고 벽은 무너져내리고, 고운 입자가 돼 흩날린다.

세계적 현상이 된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이 미디어아트로 재탄생했다. BTS 철학과 맞닿은 현대미술 작품을 세계 5개 도시에서 동시 다발로 선보이는 'Connect, BTS' 서울 전시가 28일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베일을 벗은 것이다. 20평 규모 캄캄한 사각의 방 안에 강이연(38) 작가의 9분짜리 영상 'Beyond the scene'이 음악과 함께 투사되자,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바닥의 거울 필름으로 인해 빛은 공간 전체로 퍼져 나갔다. 강 작가는 "다른 차원으로 향하려는 BTS 멤버 7명의 몸부림을 구현했다"며 "단순히 BTS의 춤·노래가 아니라 그들이 가능케 한 연대와 영향력을 다룬다"고 말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신창호 교수가 짠 안무를 1학년 학생들에게 맡긴 뒤 촬영했다. "살면서 수많은 한계를 맞닥뜨리지만 그들은 결국 헤쳐나간다."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강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다국적 BTS 팬 15명을 만났다. "팬이 아닌 내게도 'BTS 현상'은 강렬한 호기심을 불렀다. 영어도 잘 못하는 동양인이 대중문화 주류를 어떻게 장악했을까? 예술이 못한 광범위한 소통을 어떻게 해낸 걸까?" 강 작가는 '아미'라는 견고한 팬덤의 존재에서 답을 얻었다. "15세 소녀부터 61세 아주머니까지 인종과 세대를 뛰어넘는 아미들을 만났다. BTS가 그들의 삶에 끼친 지대한 영향을 알고는 함께 운 적도 있다. 현대미술은 엄두도 못 낼 지점에 이미 그들은 도달해 있었다." BTS 멤버들은 전시에 일부 비용을 댈 정도로 열의를 보였다고 한다.

작가 강이연이 BTS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작한 영상 작품 앞에 섰다. BTS 멤버를 상징하는 일곱 개의 그림자가 장막 뒤에서 격렬히 움직이며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다. 작품명 'Beyond The Scene'(BTS)은 BTS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2017년 공개한 문구로, 꿈을 향해 끊임없이 성장하는 청춘을 의미한다.

전시는 지난 14일 런던을 시작으로 베를린·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순차 개막했다. 전시 총괄 이대형 감독은 "매일 퍼포먼스 전시가 열리는 베를린의 경우 미술관에 인파가 너무 몰려 안전 문제로 입장을 제한할 정도"라고 했다. "현대미술이 보물선이어도 항해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BTS라는 새로운 물길을 만나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이번 전시에는 영국 작가 앤 베로니카 얀센스(64)가 안개와 빛으로 꾸민 두 개의 방도 선보인다. 이 감독은 "안개는 뭔가를 가리는 속성으로 인해 과감하고 솔직한 행동을 유도한다"며 "동시에 끊임없이 주변 인기척을 살피게 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하는 감각에 대해 고찰케 한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3월 20일까지 열린다.

특정 인물에서 얻은 영감을 작품화한다는 공식을 따르지만, 기존 협업과는 차이가 있다. 지난 4~5일 런던 킹스턴대학에서 BTS를 연구하는 학술대회가 열리고, BTS 관련 온라인 학술지 창간이 논의될 정도로 BTS가 지금껏 없던 '문화 플랫폼'이 됐기 때문이다. 강 작가는 "영국 서펜타인갤러리, 독일 그로피우스바우 등 유수의 미술관이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는 BTS라는 상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여러 나라와 기관과 작가가 BTS란 축으로 연결되는 새 플랫폼이 창출됐다. 개별 작품도 좋지만 다섯 도시의 점이 이어져 어떤 그림이 될지 살핀다면 더 흥미로울 것이다." 다음 달 5일, 조각 거장 앤터니 곰리(70)가 참여한 뉴욕 전시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