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반(反)화웨이 전선'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자 영어권 5국 기밀 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스(Five Eyes, 미·영·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일원인 영국이 미국의 극심한 반대에도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 사업에 중국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의 장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견고해 보이던 미국 중심 서방 동맹 체계에 생기는 균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28일(현지 시각) 국가안보회의(NSC)를 열고 화웨이를 5G 네트워크 장비 사업자로 받아들이는 방안을 승인했다고 영국 언론들이 이날 보도했다. 다만 영국 정부는 5G 사업에 대한 화웨이의 점유율을 35%로 제한하고, 핵심(core) 부분에는 화웨이 장비를 금지하는 조건을 걸었다.

왕립 수학학교 찾은 존슨, 학생이 만든 로봇 조종 - 보리스 존슨(왼쪽) 영국 총리가 27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산하 왕립 수학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이 만든 로봇을 조종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중국 기업인 화웨이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주요 정보를 빼돌릴 가능성이 있다면서 동맹국에 화웨이 장비 배제를 요구했다. 특히 영국에 대해선 NSC 결정이 임박한 지난 24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존슨 총리와 통화했고, 앞서 지난 13일에는 매슈 포틴저 NSC 부보좌관 등을 포함한 대규모 대표단을 영국에 보내 화웨이 배제를 압박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화웨이 등 각종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29일부터 이틀간 영국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트럼프'라 불리며 트럼프 대통령과 '브로맨스'를 과시해 온 존슨 총리지만 돈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미 반년 전부터 화웨이 장비를 설치한 5G 서비스를 부분적으로 시작했고, 기존 4G 시스템도 상당 부분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는 현실에서 화웨이를 배제할 경우 발생하는 68억파운드(약 10조원) 규모 손실을 감수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과의 관계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지속적인 반대에도 영국이 화웨이 장비의 5G 사업 도입을 승인하면, 당장 코앞에 닥친 미·영 무역협상이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말로 예정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에 따라 영국과 미국은 기존 미국과 EU의 무역협정을 대신할 새로운 양국 무역협정을 맺을 협상을 준비해 왔다.

영국 정부의 이번 결정이 결국 화웨이에 전 세계가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제러미 헌트 전 영국 외무장관은 BBC 인터뷰에서 "문제는 앞으로 화웨이와 경쟁할 수 있는 서방 기업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이라며 "10년쯤 뒤에 2020년 (영국 정부의) 결정이 정말 현명했는지를 되돌아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