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주 한동대학교 교수

이달 초 미국이 이란의 최고 군부 실세를 드론 공격으로 폭사(爆死)시키면서 전 세계에 커다란 불안감이 조성됐다. 중동 지역에서 금방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커졌다. 이런 위기 국면 때면 국제 자금은 금과 달러로 몰리곤 했다. 이번에도 금 가격은 올랐다. 비트코인 가격도 올랐다. 하지만 달러 가치는 하락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달러는 더 이상 안전 자산으로 여겨지지 않는 것일까.

여기에는 내막이 있다. 일본·유럽 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상태가 되자 투자자들은 엔이나 유로로 자금을 조달한 뒤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의 달러 자산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런데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공포심을 조장하자 이런 투자들을 끊는 과정에서 달러 매도세가 늘었다. 달러 가치는 이란 공습이 큰 전쟁으로 확대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생긴 이후에야 회복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한다 해도 유사시 달러 가치가 떨어진 점은 충격적이다. 미국의 패권이 흔들린다는 의미다. 많은 이가 패권을 넘겨받을 국가로 중국을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 저성장의 근본적 문제가 제도권 기능의 한계에서 비롯됨을 감안할 때 경제의 패권은 국가가 아닌 민간 플랫폼으로 넘어올 것으로 보인다.

미·이란 사태 때 달러 하락은 충격적

앞으로는 기관이 개인의 금융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라 금융 및 투자 관련 정보만 제공하고 의사 결정은 개인이 하는 형태로 바뀔 것이다. 의사 결정이 잘못되면 투자자가 손해를 보고 바로 마무리되며, 부실이 다른 곳으로 전염되지 않는다. 구글·아마존 등 글로벌 민간 플랫폼들은 인공지능 및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이런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하고 싶어 한다. 각 플랫폼의 이용자 수가 수십억까지 늘어날 수 있다. 웬만한 국가보다 크다. 경제 패권은 미국에서 중국이 아닌 이 민간 플랫폼들이 넘겨받을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플랫폼을 규제하며 그들의 성장을 견제하고 있지만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근시안적으로 보면 투자 펀드에서의 패권 이동도 감지된다. 최근 7조달러 운용 규모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투자기관인 블랙록(BlackRock)은 기후변화를 중시하겠다고 밝혔다. 친환경이라는 대의명분을 따지기 전에 투자 펀드의 수익률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에게 '보람'이라도 드리겠다는 얄팍한 상술로도 보인다. 블랙록은 투자 펀드에서 석탄 관련 기업 비율을 25%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만큼을 ESG(친환경, 사회적 공동 가치, 기업지배구조)를 존중하는 기업들로 대체한다는 방침이다. 블랙록이 그렇게 방향을 잡았으면 게임은 끝났다. 돈이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제는 저성장 속에서 눈부신 수익률을 내는 펀드들이 사라져 시중 투자 자금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주체가 블랙록처럼 벤치마크를 만드는 거대 인덱스 펀드들이기 때문이다. 우선 대규모 국부 펀드나 연기금들이 이들을 추종하고 있다. 초과 수익을 추구하던 기존 패권의 액티브 펀드들도 이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친환경 투자 펀드가 많아지면 관련 기업들 매수세가 생기고, 그 주가가 상승해 인덱스 내 친환경 비율이 높아지면 이를 복제하는 연기금들의 매수세가 뒤따른다. 즉 인덱스 펀드가 쏠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액티브 펀드들도 여기에 편승하려 한다.

길게 보면 사람에서 로봇으로 가치 이동

그다음으로는 내구성 소비재에서의 패권 이동이다. 지금까지는 이 분야의 패권을 자동차가 쥐고 있고, 사람들은 아직 자동차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다. 얼마 전 유럽에서 자동차 공유 플랫폼을 선도하고 있는 BMW와 다임러는 예정했던 투자를 보류했다. GM과 포드의 자동차 공유 서비스도 주요 도시에서 철수하고 있다. 왜냐하면 자동차 공유가 소비자들의 비용을 줄여줄 수 있음에도 사람들은 차를 자신이 혼자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이해하고 있고, 소유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반면 애플은 고가의 스마트폰을 출시했지만 가격 저항을 받고 있다. 그 안에 흥미로운 기능이 많지만 그만큼 복잡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스마트폰보다 자동차를 더 좋아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애플은 왜 더 고가의 스마트 제품을 계속 출시할까? 데이터 중심 사회로 바뀔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스마트해져야 저성장 속에서 효율적으로 경비를 줄일 수 있고, 친환경도 도모할 수 있다. 스마트 인프라가 구축되어 갈수록 대용량 데이터를 소화할 수 있는 하드웨어는 더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자동차 및 스마트 기기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점과 남에게 과시하고 싶은 액세서리 기능이다. 즉 여기에 거금을 쓸 의향이 있다. 소비자들이 2~3년에 한 번씩 몇백만원에 달하는 스마트폰을 구입하게 될 때 어느 쪽 예산을 줄일까? 자동차 공유 인프라가 발달해서 이용이 편해질수록 사람들은 자동차 소유를 포기할 것이다. 특히 5G 화상 통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이동 수요는 줄어들 것이고, 이것이 친환경에도 기여한다.

길게 보면 가치가 사람에서 로봇으로 넘어갈 것이다. 인구는 예상보다 빠르게 줄고, 로보틱스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인공지능에 가치관, 목표, 윤리 등을 주입하면 기계도 상상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의 시대가 도래하여 컴퓨터의 계산 능력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면 그 추세는 가속화될 것이다. 친환경도 인간의 노력보다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며,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로보틱스는 우리 생활에 더욱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