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되면 제주에서는 ‘입춘굿’이 펼쳐진다.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었다가 1999년 ‘탐라국 입춘굿놀이’로 복원돼 전승되고 있다. 입춘굿의 피날레는 ‘낭쉐몰이’이다. ‘낭’은 나무를, ‘쉐’는 소를 이르는 제주말이다. 나무로 만든 소에 쟁기를 매달아 끄는 놀이이자 의례이다. 그래서 입춘굿을 ‘춘경’이라 하고 굿놀이를 ‘춘경친다’고 했다.

'위지동이전'에 탐라국 사람들은 '소와 돼지 키우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3세기 무렵 기록이다. 일제강점기 전국 소의 30%를 제주에서 길렀다. 소는 대부분 밭농사를 위한 일소였다. 거친 밭은 거세하지 않아 힘이 센 수소 '부사리'를 부렸다. 그렇지 않은 밭은 거세해 힘이 약한 수소 '중성귀'나 암소를 썼다.

제주의 일소는 밭을 갈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 방목했다. 풀이 자라지 않는 겨울철에 대비해 초지를 관리했다. 이 풀밭을 '촐왓'이라 했다. 마을 촐왓, 공동 촐왓, 개인 촐왓 등이 있었다. 여행객이 즐겨 찾는 오름을 촐왓으로 이용했다. 방목할 때는 일소 주인들이 돌아가면서 품앗이했다. 이를 '쉐접'이라 하고, 그 소를 '번쉐'라 했다. 수풀이 무성한 곳에 사철 방목하는 소는 '곶쇠'이다.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의 굼부리도 곶쇠들의 삶터였다. 농작물이나 풀이 자라는 시기에 방목한 소가 촐왓이나 밭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일을 하는 '케지기'를 두었다. 소 배설물은 밭농사에 필요한 거름과 구들장을 데우는 연료로 사용했다.

소가 역병에 걸리는 것을 막는 방사탑을 쌓았고, 영험한 쇠하르방과 쇠할망을 당에 모시고 잃어버린 번쉐를 찾기도 했다. 정월 보름 오름에 불을 놓는 ‘방애불놓기’도 풀이 잘 자라게 하고 병충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제주를 대표하는 새별오름 들불 축제의 기원이기도 하다. 아쉽게 경운기가 제주에 들어오고, 화학비료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일소는 사라졌다. 대신 비육우와 사료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도 시민들이 만든 낭쉐를 앞세우고 쟁기질을 하는 낭쉐놀이 전통이 복원되어 얼마나 다행인가. 이번 입춘 날에도 관덕정 앞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