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논설위원

설 연휴 전 '왜 사기 탄핵인지 이제 알겠다'는 제목의 한 대학생 글이 소셜미디어 게시판에서 화제가 됐다. 글 가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잘못한 게 많지만 최고의 잘못은 뻔뻔하지 못했던 것'이라는 대목이 눈길을 끌었다. 탄핵 사태가 시작된 2016년 가을이 떠올랐다. '태블릿 PC' 보도가 나오면서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어떤 식으로든 매만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날 대통령은 평소답지 않게 당황했고 귓불까지 벌게졌다고 측근들은 뒷날 말했다.

부질없는 얘기지만 전 정권 사람들은 그 보도가 나온 직후 서둘러 사과했던 일을 후회한다고 했다. 사태 파악도 제대로 못 한 채 고개부터 숙인 게 패착이었다고 했다. 지지층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언론 보도를 공박하며 버텼다면 사태가 달라졌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음 날 기자회견장에 나온 박 대통령은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 숙였고, 지지율도 뒤따라 고개 숙였다. 사태는 되돌리기 어려워졌다.

문재인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본다. 버텼을 것이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고, '비판 언론이 가짜뉴스를 만들어 우리를 탄압한다'고 지지층에게 호소했을 것이다. 황당한 논리, 엉뚱한 트집을 잡아 어용 언론으로 여론몰이 하며 되치기를 시도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적잖은 국민은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조국 사태, 울산 선거 공작, 유재수 비리 무마 사건에 대처하는 문 대통령을 보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문 정권은 뻔뻔함을 정권 유지 수단으로 삼아왔다. 부끄러움을 애써 무시하는 무치(無恥)가 정권 유지의 핵심 노하우였다. 무능, 부도덕, 거짓이 드러날 때마다 눈동자에서 동요조차 느낄 수 없는 수준급 뻔뻔함을 보여왔다.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은 압권이었다. 나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지표가 좋아졌다고 자랑했다. 조국에게 세게 뒤통수 맞은 국민을 앞에 두고 "정의 가치를 확산시켰다"고 했다. 자신의 범죄 혐의를 수사하는 검찰 손발을 묶고선 '검찰 개혁'이라고 큰소리쳤다.

'무치의 고수' 대통령을 따라 이 정권 사람들은 뻔뻔함에서 다들 한가락 한다. 국회의장은 평생 내걸어온 민주주의 이력을 내던지고 아들을 위해 법안 날치기에 앞장섰다. 입법부 수장을 했던 스마일맨은 행정부 이인자를 해보겠다고 다리 밑으로 기어들어가며 '국민을 위해서'란 핑계를 댔다. 집권 여당 대표 하던 사람은 무슨 영화를 더 누릴 요량인지 법무부장관을 꿰차고 망나니 칼춤을 춘다. 청와대 소통수석과 대변인은 "문재인 청와대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사찰 유전자가 없다"는 말을 부끄럼 없이 한다. 정권 전체가 부끄러움을 집어던졌다.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사회를 이뤄 살아온 인간이 진화한 결과다. 짐승이 갖지 못한 감정이다. 부끄러워야 사람이다. 한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면 사람 취급을 안 하면 그만이지만 정권이 부끄러움을 모른 채 막 나가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해 여름 이후 적지 않은 국민이 그런 난감함을 느꼈을 것이다.

납량물이 필요하다는 사람에게 유튜브에 떠 있는 문 대통령 취임식을 보라고 권한 적이 있다. 진지하게 '국민 통합' '탕평 인사' '공정 정의'를 읽어내려가는 문 대통령의 표정에 지금의 현실이 겹쳐지면 소름이 안 돋으려야 안 돋을 수가 없다. 권력이 부끄러움을 내다버리면 나라가 망한다. 북한을 보면 안다. 수백만 인민을 굶겨 죽이고 한반도 북쪽을 세계 최악 후진국으로 만든 김씨 왕조는 부끄러움을 모른 채 마냥 뻔뻔하다. 그 못지않게 뻔뻔한 권력이 한반도 남쪽에도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