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조선]

전문가 영입 각축전
전담 조직 앞다퉈 신설
경쟁사라도 적극 연합

국내 주요 기업 가운데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회사는 삼성전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6년 10월 등기이사에 선임된 직후부터 AI 관련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부회장은 2017년 11월 출범한 삼성리서치에 AI센터를 신설한 데 이어 미국 실리콘밸리와 뉴욕, 영국 케임브리지, 캐나다 토론토와 몬트리올, 러시아 모스크바 등에도 AI센터를 잇달아 세웠다.

삼성전자가 세계 각지에 AI센터를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 글로벌 인재를 끌어모으기 위해서다. 모스크바 AI센터는 AI 알고리즘 전문가로 유명한 드미트리 베트로프 러시아 고등경제대학 교수가 이끈다. 케임브리지 AI센터에는 AI 기반 감정 인식 연구의 대가 마야 팬틱 영국 임페리얼대 교수가 속해 있다. AI 권위자인 세바스찬 승 미 프린스턴대 교수도 삼성리서치 소속(부사장)이다.

김현석(왼쪽) 삼성전자 사장이 1월 6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공 모양의 AI 로봇 ‘볼리’를 소개하고 있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지난해 11월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문화혁신포럼’ 행사에 참석해 발표하고 있다.

사람뿐 아니라 유망 AI 기업 흡수에도 적극적이다. 삼성전자는 투자 자회사 삼성넥스트를 통해 코베리언트.AI, 언바벨, 인튜이션 로보틱스 등 우수 기술력을 갖춘 AI 스타트업을 인수했다. 실리콘밸리의 AI 플랫폼 개발사 비브랩스도 2016년 11월 삼성전자의 가족이 됐다. 삼성전자는 올해까지 AI 연구·개발(R&D) 인력을 1000명 이상으로 늘리기로 했다. 2017년부터는 전 세계 AI 석학을 초청해 최신 연구 동향을 듣는 ‘삼성AI포럼’도 개최하고 있다.

삼성 AI 비즈니스의 지향점은 뭘까. "우리는 제품(device)을 중심에 두고, 고객 생활과 밀접한 AI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삼성전자 한국 AI센터를 총괄하는 이근배 센터장(전무)의 답은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매년 5억 대 이상의 제품을 파는 세계 최대 전자 회사이기 때문이다. 이 센터장은 "전 세계인이 사용하는 삼성 제품에 AI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스마트폰·태블릿PC·TV·냉장고 등 삼성전자가 출시하는 제품 대부분에 삼성전자의 AI 플랫폼 ‘빅스비’를 탑재한다.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소비자가전부문장)은 1월 6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 기조연설에서 지능형 동반 로봇 ‘볼리’를 소개하기도 했다.

◇에어랩·AIX센터…AI 역량 집결

현대자동차 역시 AI 전력 강화의 성패 여부가 인재 영입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현대차는 2018년 11월 AI 전문 연구 조직 ‘에어랩(AIR Lab)’을 신설하고, 김정희 네이버랩스 수석연구원을 영입해 조직 총괄(상무)을 맡겼다. 지난해 2월에는 네이버에서 AI 통·번역 서비스 ‘파파고(Papago)’를 개발한 김준석 리더(팀장급)를 책임연구원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김준석 연구원은 국내 자연어 처리 분야에서 손꼽히는 개발자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AI 기반의 부분 자율주행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에어랩은 현대차의 6대 AI 전략 과제인 생산 효율화, 프로세스 효율화, 고객 경험 혁신, 미래 차량 개발, 모빌리티 서비스, 서비스 비즈니스 관련 연구를 수행 중이다. 연구 성과 극대화를 위해 현대차는 중국 AI 스타트업 딥글린트, 서울대 등과 협업 관계를 강화하는 한편 미국 퍼셉티브 오토마타, 이스라엘 알레그로.ai 등에 전략 투자했다. SK텔레콤·한화자산운용과는 4500만달러(약 521억원) 규모의 ‘AI 얼라이언스 펀드’를 조성했다.

의미 있는 결실도 나오기 시작했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지난해 10월 운전자의 주행 성향에 맞는 부분 자율주행 기술 ‘SCC-ML(Smart Cruise Control-Machine Learning·머신러닝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SCC-ML은 운전자의 주행 성향을 차가 스스로 학습한 다음 운전자와 거의 흡사한 패턴으로 자율주행하는 기술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2020년을 미래 시장에 대한 리더십 확보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SK그룹의 경우 핵심 계열사 중 한 곳인 SK텔레콤이 지난해 말 실시한 조직 개편에서 그간 분산 운영해 온 기술 조직(AI센터, ICT기술센터, DT센터)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총괄하는 ‘AIX센터’로 통합했다. AI가 모든 사업의 핵심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줬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1월 2일 열린 신년회에서 "AI를 기반으로 비즈니스와 일하는 문화를 혁신하자"고 했다.

박 사장은 1월 8일(현지시각) 미국 CES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삼성전자 같은 국내 기업과 AI 공동 개발을 위해 초(超)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구글·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기업들끼리 AI 기술을 공동 개발하는 것처럼 국내 IT 기업과 연합해 AI 분야에서 해외 업체에 대항해야 한다"며 "힘을 합치지 못하면 나중에 (미국 기업이 개발한) AI의 사용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했다.

plus point

[Interview] 김주민 LG전자 인공지능연구소장
"5년 후면 AI가 답 들고 먼저 말 건다"

"행동을 분석해 패턴을 찾고 사용자를 구분할 수 있는 AI 기술이 2020년부터 LG전자 제품에 널리 적용될 겁니다."

김주민 LG전자 인공지능연구소장(상무)은 1월 15일 ‘이코노미조선’과 인터뷰에서 "현재 출시된 AI 가전 대부분이 지정된 명령·조건에 따라 제품을 동작시키는 수준이지만, 올해부터는 더 영리한 AI 가전이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LG전자는 미국 CES에서 AI 발전 단계를 효율화(1단계), 개인화(2단계), 추론(3단계), 탐구(4단계) 등 총 4단계로 구분한 바 있다. 이 기준에 맞춰 김 소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현재까지 출시된 AI 가전은 1단계에 머물러 있고, 이제 2단계로 넘어간다는 의미다.

LG전자의 최종 목표인 4단계에 도달하면 AI가 스스로 논리적으로 추론하고 가설을 세워 더 나은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김 소장은 "예컨대 기존 운동 효과를 분석해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새로운 요가 코스 등을 제안하거나 약속 상대방에게 어울리는 외출 의상을 제안하는 식"이라고 했다.

김 소장은 3단계 이상 고도화한 AI 기술이 제품에 적용되기까지 5년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용자의 수면 품질을 분석한 AI가 물어보지 않아도 먼저 ‘취침 시 냉각팬을 가동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하는 날이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국내외 유망 업체에 대한 지분 투자, 인수·합병(M&A) 등을 꾸준히 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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