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ing 02’(2015).

가문 땅 위의 바위, 절망적인 정물(靜物)로 보인다. 그것은 그러나 혼자서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땅바닥에 남아 있는 이동의 궤적이 증거다. 미국 서부 데스밸리(Death Valley)에서 간혹 발견되는 이 신비한 현상은 급격한 온도 차와 바람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개척자들이 '죽음의 계곡'이라 이름 붙인 이 황무지를 사진가 이정진(59)씨는 스무 번도 넘게 찾았다. "완전히 혼자 있는 느낌 때문에 침묵마저 공포스러운 곳"이다. 거기서 그는 바위나 거기서 떨어져나온 흙, 여윈 나무 등을 촬영했다. 이 불모의 이미지들은 죽음의 토대 위에 엄연히 존재하며, 살아서 공간을 열어젖힌다. 일련의 사진은 '오프닝' 연작으로 남았다.

이씨의 개인전이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3월 5일까지 열린다. 미국과 캐나다 등지를 돌며 촬영한 25점의 흑백사진은 그러나 명상적 여백의 기운으로 인해 동양 수묵을 연상시킨다. 대학 시절 도자를 전공한 이씨는 "붓글씨와 도자의 경험이 사진에 녹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주로 한지(韓紙) 위에 사진을 인화한다. "한지는 숨 쉬는 종이다. 색조가 안에서부터 새어나오는 깊이감이 있다."

오지로 향한다. 스물여섯 나이, 울릉도 심마니를 취재하러 몇 번이고 동해를 건너며 단련된 습관이다. "나는 거리의 사진가다. 줄곧 자연과의 어떤 합일을 바라며 작업해왔다. 자연광으로만 찍고, 렌즈도 대개 한 개, 장비는 거의 쓰지 않는다." 그렇게 그는 바깥의 내면을 찍는다. 2015년 데스밸리의 어느 새벽, 일출 보러 나선 길에 촬영한 능선 사진은 낮은 조도 탓에 한 폭의 산수화처럼 보인다. "몹시 캄캄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저 너머에서 해가 올라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