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수 논설위원

문재인 정부가 발동을 건 포퓰리즘은 어디까지 폭주할까. 정권이 바뀌면 제동이 걸릴까. 현금 복지에 맛 들인 국민이 복지 후퇴를 기꺼이 수용한 전례가 있을까. 불행히도 그런 사례는 없는 것 같다. 포퓰리즘이란 악성 잡초는 발아 단계에서 차단해야 한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정부 시절 포퓰리즘 발아를 막을 기회가 몇 차례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사회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해법으로 복지 확대와 경제 민주화를 제시했다. 모든 노인 월 20만원 기초연금 지급, 아동 보육료·양육수당 지급, 4대 중증 질환 의료비 국가 부담 등을 약속했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재벌 총수 사익 편취 금지 등 지금 문 정부가 추진 중인 '공정 경제' 관련 공약도 많았다.

하지만 박 정부는 집권 후 재정 부족 등을 이유로 복지 수혜 범위를 축소하고, 경제 민주화 공약은 대부분 철회했다. 공약 파기 시비가 이어졌다.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줄이려는 시도가 '깃털 증세' 시비에 휘말려 좌절된 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개혁 보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는 2015년 국회 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는 여야가 따로 없는 시대적 과제"라면서 야당 측에 "시장경제와 한국자본주의의 결함을 함께 고쳐 나가자"고 협치를 제안했다. 하지만 유 대표에게 돌아온 것은 "자기 정치를 한다"는 대통령의 면박과 대표직 박탈이었다. 만약 보수 정부가 '복지 확대-증세 조합' 국정을 펼치고, 그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복지 확대엔 고통 분담이 필요하다는 점을 학습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좌파 포퓰리즘의 폭주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보수 정당들이 정권 심판을 내걸고 총선 연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보수 재건의 목적은 총선 승리가 아니라 대한민국 재도약이어야 한다. 보수가 다시 국민 신뢰를 얻으려면 어떤 국정 철학을 내걸어야 할까. 경제 분야부터 보자면, 한국당이 내세운 '민부론(民富論)'은 진부하다. 친기업, 감세를 앞세운 민부론의 담론은 소득 주도 성장론과 정반대일 뿐, 참신함과는 거리가 멀다. 법인세 인하, 부동산 거래세 인하, 상속·증여세 인하 같은 지지층이 좋아할 감세 정책만 제시할 뿐, 한층 높아진 복지 요구를 뒷받침할 재원 확보(증세) 방안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다. 복잡하고 어려운 이슈인 사교육 문제, 국민연금 개혁, 공유경제 이슈 등에 대해선 피해가기 급급한 인상이다. 이러니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같은 눈 밝은 원로가 "문 정부는 깜깜절벽이고, 야당은 더 답답하다"고 하지 않나.

세계 최악의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이 산업의 대전환기에 과거 성장 모델로 저성장 늪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보수가 대안 세력으로 거듭나려면 진영 논리를 초월해 파격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모든 국민이 적은 금액이라도 세금을 내게 하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원칙하에 '복지+증세' 청사진을 제시하면 어떨까. 우선 근로자의 40%에 달하는 면세자를 없애 '납세 교육'부터 시키고, '보유세 속도 조절+거래세 인하'를 담은 세제 개혁을 제안하자. 4차 산업혁명 인재를 키우기 위해 대학 모집 정원, 등록금 결정권을 대학에 돌려주자. 재집권했을 때 협치를 담보할 제도적 틀을 먼저 제안하자. 예를 들어, 복수혈전을 막기 위해 대통령의 검찰총장 임면권을 없애고, 국민연금 이사장, 공영방송 사장 낙하산 금지법을 제정하자. 보수부터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스마트한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등 돌린 유권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